정부와 정치권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입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이를 어떤 방식으로 설계할지를 두고 금융권과 블록체인 업계 사이의 의견 차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행과 금융당국은 안정성과 통화정책 유지를 위해 전통 금융기관 중심의 모델을 선호하는 반면, 일부 민간 연구기관과 업계는 글로벌 시장과의 정합성과 혁신성을 이유로 자본시장 기반의 분산형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란 실물 자산, 주로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통화를 담보로 발행되는 암호자산(가상화폐)이다. 일반적인 암호화폐보다 가격 변동성이 낮고 유통 안정성이 크기 때문에 전자지급 수단이나 탈중앙화 금융(디파이) 체계에서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으며, 최근 정치권에서는 관련 법안 발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올해 들어 여야 국회의원들이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을 다수 발의하면서, 향후 법안 심사를 통해 제도화가 추진될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시장의 안정성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우선시하는 한국은행은 지난 10월 발표한 백서를 통해, 은행이 발행 주체가 되거나 최소한 은행 권역 중심의 컨소시엄이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보기술 기업이 뒤에서 지원하는 형태는 가능하되, 이들 단독 주체의 진입은 제한하겠다는 취지다.
반면, 블록체인 전문 연구기관인 해시드오픈리서치는 은행 중심의 접근 방식이 구조적인 한계를 지닌다고 분석했다. 이 기관의 임민수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통화 주권 확보 및 디지털 경제에서의 경쟁력 강화 수단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글로벌 주요 스테이블코인인 테더(USDT)나 서클(USDC)도 자본시장 기반에 가깝다며, 한국도 비슷한 전략을 채택해 디지털자산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연구보고서들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실제 정책 방향에 영향을 미칠만한 인물이 연관돼 있다는 점도 있다. 해시드오픈리서치는 현재 대통령실의 김용범 정책실장이 대표로 재직하던 곳이며, 김 실장은 과거 공직 외 여러 보고서와 세미나 활동을 통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필요성과 통화 정책 측면의 가능성을 강조해왔다. 이에 따라 정부와 여당 내부에서도 자본시장 모델을 일정 부분 반영한 입법 추진이 조율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까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측에서 각각 스테이블코인 관련 기본법 또는 특별법을 발의한 상황이며, 정부 여당 측에서도 조만간 금융 당국과 입장을 조율한 법안을 추가 제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이달 하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에서 본격적인 법안 심사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논의는 단순한 기술 채택이나 산업 문제를 넘어, 앞으로 디지털 경제의 인프라가 어떻게 구성될지에 관한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향후에는 금융 안정과 혁신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형 모델이 어떤 차별성을 확보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