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의 장기 국채 바이백 확대를 두고 재정 신호를 정부가 누르는 것 아니냐는 논쟁이 커졌다. 회당 바이백 규모가 최소 40억 달러(약 5조5320억원)로 높아지면서 장기금리와 위험자산 가격을 함께 보는 투자자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스탠리 드러켄밀러(Stanley Druckenmiller) 듀케인 패밀리오피스 회장은 24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미국 재무부의 조치가 채권시장의 재정 경고 기능을 약화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장기 국채 바이백 확대가 유동성 관리처럼 보이지만 시장에는 장기금리 신호를 낮추려는 가격 관리로 읽힐 수 있다고 봤다.
미국 재무부는 19일 10~30년 만기 명목 국채 유동성 지원 바이백 규모를 회당 20억 달러(약 2조7660억원)에서 최소 40억 달러로 늘린다고 밝혔다. 적용 기간은 9월 9일부터 11월 4일까지다.
재무부는 장기물 구간에서 시장 참가자의 양질의 매도 제안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며 유동성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다음 분기 바이백 규모와 관련한 추가 내용은 11월 4일 분기 차환 발표에서 제시할 예정이다.
쟁점은 시점이다. 장기 국채금리는 최근 고점권에 머물렀고, 월스트리트저널은 30년물 미 국채금리가 한때 5.31%까지 올라 2007년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재무부가 이 구간의 바이백을 확대한 것은 장기 차입 비용 상승에 대응한 조치로 해석됐다.
국채 바이백은 재무부가 시장에 유통 중인 국채를 다시 사들이는 채무 관리 수단이다. 특정 만기 구간에서 거래가 원활하지 않거나 매도 수요가 몰릴 때 정부가 물량을 받아 시장 유동성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채권 가격과 수익률은 반대로 움직인다. 재무부가 장기 국채를 사들이면 해당 채권 가격에는 상승 압력이, 수익률에는 하락 압력이 생길 수 있다. 다만 미 국채시장 전체 규모와 비교하면 회당 40억 달러 바이백의 직접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드러켄밀러의 문제 제기는 효과보다 신호에 맞춰져 있다. 그는 당시 시장에 경매 실패, 거래 혼란, 강제 디레버리징 같은 이상 징후가 뚜렷하지 않았다고 봤다. 금리 상승 자체가 미국 재정 상태에 대한 채권시장의 가격 매김이라면 정부가 이를 낮추려는 신호를 주는 일은 경고음 차단에 가깝다는 취지다.
그가 지목한 배경은 높은 물가와 낮은 실업률,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6% 수준의 재정적자, 40조 달러(약 5경5320조원)를 넘긴 연방정부 부채다. 이런 조건에서 투자자가 장기 국채 보유에 더 높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가격 조정이라는 설명이다.
재정 논쟁은 통화정책 논쟁으로도 번졌다. 장기 국채를 사들이면서 단기 국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면 시장에 남는 듀레이션 위험이 줄어드는 효과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본지는 재무부의 장기 국채 바이백 확대를 둘러싼 양적완화 논쟁을 전했다.
전통적인 양적완화(QE)는 연방준비제도가 통화정책 목적으로 대규모 자산을 사들여 금융 여건에 영향을 주는 조치다. 재무부 바이백은 법적 성격과 운용 목적이 다르지만, 시장이 장기금리 억제 신호로 받아들이면 정책 효과에 대한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이해관계도 엇갈린다. 장기금리가 내려가면 정부의 차입 비용 부담과 성장주 할인율 부담은 완화될 수 있다. 반대로 채권시장이 재정 위험을 가격에 반영하는 통로가 약해지면 적자 축소와 부채 관리 압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크립토 시장이 이 논쟁을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같은 위험자산은 달러 유동성, 실질금리, 장기 국채금리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장기금리가 위험자산 평가에 미치는 영향은 최근 미국 증시와 암호화폐 시장을 함께 설명하는 핵심 변수로 다뤄져 왔다.
한국 투자자에게도 장기금리 논쟁은 간접 변수다. 미국 장기금리 상승은 달러 강세, 글로벌 성장주 조정, 국내 기술주와 가상자산 투자심리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정책 도구로 금리 상승이 눌린다는 해석이 커지면 유동성 기대가 위험자산 거래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
드러켄밀러는 장기 국채금리를 시장이 정부 차입 비용을 정하는 통로로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재정적자 축소와 복지 지출 조정, 부채 경로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함께 폈다. 재무부의 장기 국채 바이백 확대는 예정대로 9월 9일부터 시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