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시장이 ‘대전환’ 국면에 들어서면서 향후 기업들의 소프트웨어 지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동시에 실적과 무관하게 소프트웨어 기업 전반에 ‘부정적 심리’가 덧씌워지며, 주가와 사업 체력이 따로 노는 괴리도 커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SaaS 시장 ‘대전환’…“소프트웨어 지출, 지금의 100배 될 수도”
워크 OS(업무 운영체제) 기업 먼데이닷컴(monday.com) 공동창업자 겸 공동CEO인 에란 진만(Eran Zinman)은 최근 발언에서 “SaaS 시장이 큰 변화를 겪고 있고, 그 결과 소프트웨어 지출이 급격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소프트웨어에 쓰는 돈이 지금의 ‘100배’ 수준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취지로 언급하며, 이른바 ‘SaaS 폭락(사스 아포칼립스)’이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금리·경기 둔화 같은 거시 환경 변화가 소프트웨어 밸류에이션(기업가치 산정)에 압박을 주는 가운데, 기술 발전과 시장 구조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소프트웨어 투자 방식 자체가 재편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먼데이닷컴 “매출 13억달러인데 시총 39억달러…저평가”
진만은 특히 먼데이닷컴의 시장 평가가 본질 가치에 비해 낮다고 주장했다. 그는 “먼데이닷컴은 매출 규모가 상당함에도 현재 시장에서 크게 저평가돼 있다”며, 매출이 약 13억달러(약 1조9,225억원, 1달러=1,479.30원 기준)에 이르는데도 미국 증시에서의 기업가치가 약 39억달러(약 5조7,693억원)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짚었다.
이를 두고 소프트웨어 기업의 가치평가가 성장성만으로 움직이던 국면에서, 수익성·현금흐름·거시 변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면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왜곡’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업은 돌아가는데 심리는 냉각”…시장과 현장의 괴리
진만은 “비즈니스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과 시장의 센티멘트(투자심리) 변화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프트웨어 기업 전반에 붙은 ‘부정적 프레임’이 실제 영업 현장의 수요나 제품 경쟁력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런 괴리는 투자자 입장에서 실적(펀더멘털)과 밸류에이션 사이의 간극을 키우고, 기업 입장에서는 인재 채용·M&A·장기 로드맵 같은 의사결정을 더 보수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 구조 전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UI 만드는 것과 ‘조직 전체가 쓰는 소프트웨어’는 다르다
최근 개발 생산성을 높이는 흐름 속에서 ‘바이브 코딩(vibe coding)’ 같은 도구가 주목받지만, 진만은 소프트웨어의 핵심 난이도는 다른 곳에 있다고 봤다. 그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빠르게 만드는 것과, 조직 전체에서 깊이 있게 작동하는 실제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부서별 업무 흐름, 권한 체계, 데이터 정합성, 보안·감사 요구사항, 기존 시스템과의 연동 등 ‘현업 변수’를 견뎌야 한다. 결국 겉으로 보이는 화면 구현보다, 조직 운영에 맞는 기능·정책·통합을 설계하는 일이 진짜 허들이라는 의미다.
소프트웨어의 진짜 비용은 ‘유지보수’…“시간이 갈수록 더 어렵다”
진만은 유지보수의 난이도가 과소평가돼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며 소프트웨어를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과소평가한다”며 “첫 버전을 만드는 건 쉽지만, 시간이 지나며 변화에 맞춰 바꾸고 적응시키는 건 많은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용 제품은 고객 요구 변화, 규제 및 보안 기준 강화, 인프라 환경 변화, 경쟁 제품의 기능 기준 상향 등으로 ‘계속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쉽다. 초기 개발 속도보다 장기 운영 역량이 회사의 경쟁력을 가르는 이유다.
‘바이브 코딩’이 소프트웨어 기업을 무너뜨릴까…“그 가능성 낮다”
진만은 바이브 코딩의 기술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을 파괴할 수준의 ‘디스럽션(시장 교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자사 제품 안에도 유사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이게 소프트웨어 기업을 무너뜨릴 거라고 보진 않는다”고 말했다.
핵심은 투자자들도 바이브 코딩을 소프트웨어 기업 주가를 흔드는 1차 요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시장은 ‘개발 도구의 혁신’보다도 금리, 성장률, 매출의 질(유지율·업셀·고객 구성), 수익성 같은 지표를 더 크게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AWS가 ‘모든 가치’를 가져갈 줄 알았지만…현실은 생태계 폭발
진만은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마존웹서비스(AWS) 등장 이후를 예로 들며, 플랫폼이 모든 가치를 독식할 것이라는 통념이 빗나간 사례를 언급했다. 그는 “아마존 같은 회사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가치를 전부 가져갈 거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가 벌어졌다”며 “아마존 위에서(인프라를 활용해)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들이 붐을 이루며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클라우드 인프라가 표준화되면서 진입 장벽이 낮아졌고, 그 위에서 특정 산업·업무를 겨냥한 SaaS 기업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생태계 성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오픈AI·앤트로픽도 엔터프라이즈 가치를 다 가져가진 못한다
AI 기업들이 기업 소프트웨어 시장의 이익을 전부 흡수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진만은 회의적인 시각을 내놨다. 그는 오픈AI(OpenAI), 앤트로픽(Anthropic) 같은 기업이 “엔터프라이즈 세일즈(기업 영업) 프로세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고, 더 큰 기회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기업 시장의 가치를 모두 가져가진 못할 것이라고 봤다.
엔터프라이즈 시장은 기술력만으로 열리는 곳이 아니라, 보안·컴플라이언스·도입 컨설팅·운영 지원·계약 구조 등 복합적인 ‘구매 장벽’을 넘어야 하는 영역이라는 점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PLG’만으로 안 된다…핸드헬딩이 필요
진만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판매 방식이 소비자용 소프트웨어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직 전체에 깔리는 소프트웨어를 순수한 PLG(제품 주도 성장)만으로 사는 일은 없다”며, 기업 고객은 도입 과정에서 ‘핸드헬딩(밀착 지원)’을 원한다고 말했다.
개별 사용자가 자발적으로 확산시키는 방식은 일부 계정 확대에는 유효할 수 있지만, 전사 도입 단계에서는 교육·권한 설계·업무 프로세스 전환·성과 측정까지 포함한 ‘가이드형 영업’이 중요해진다는 설명이다.
결국 관건은 ‘심리’가 아니라 실행…SaaS 재평가의 조건
이번 발언을 종합하면, SaaS 시장은 기술과 수요가 커지는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단기적으로는 투자심리와 밸류에이션 압박이 강한 ‘전환기’에 놓여 있다. 특히 바이브 코딩이나 AI의 부상은 소프트웨어 제작의 일부를 빠르게 만들 수는 있어도, 조직 전체에 깊게 들어가는 제품의 유지·확장·판매까지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게 진만의 시각이다.
향후 소프트웨어 지출이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흐름이 현실화될 경우, 시장은 다시 ‘실행력’과 ‘운영 역량’을 증명한 SaaS 기업들을 중심으로 재평가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성장 스토리”보다 중요한 건 ‘검증’과 ‘실행’…토큰포스트 아카데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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