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케빈 워시 의장은 최근 인플레이션 위험이 다소 낮아졌다고 평가하면서도, 물가 수준 자체는 여전히 높다며 통화정책 방향을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워시 의장은 1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유럽중앙은행 주최로 열린 중앙은행 포럼에 참석해 최근 4주 동안 기대 인플레이션이 내려갔고, 이에 따라 물가 상승 위험도 완화됐다고 진단했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가계와 기업, 금융시장이 앞으로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 예상하는 지표로, 중앙은행이 금리 정책을 판단할 때 중요하게 보는 변수다. 이번 발언은 연내 미국 기준금리가 더 오를 수 있다는 시장 일각의 전망과는 결이 다소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 배경에는 최근 국제유가 안정이 깔려 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 국면에 들어서면서 전쟁 우려로 급등했던 유가가 빠르게 진정됐고, 에너지발 물가 불안도 함께 누그러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워시 의장은 유가 급등의 영향이 단기적으로 수요 측면에서 나타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인지 판단하려면 특정 품목을 넘어 상품과 서비스 전반으로 가격 상승이 번지는지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지금도 물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목표를 느슨하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기대는 맞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실제 미국 연준의 물가 목표는 2%지만, 연준이 가장 중시하는 물가 지표인 개인소비지출 가격지수는 지난 5월 전년 동월 대비 4.1% 올라 3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이 수치에는 최근 유가 하락 흐름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거론된다. 이런 상황에서 워시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와 관련한 질문에 연준은 독립적인 중앙은행이라고 답하며 정치적 압력과 통화정책은 분리돼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이달 28∼29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냐는 질문에도 구체적 답변을 피했다.
이는 연준이 미리 정책 경로를 상세히 예고하는 이른바 포워드 가이던스(선제 안내 제도)에서 한발 물러서겠다는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워시 의장은 위원들이 회의장에서 치열한 토론을 거쳐 판단할 것이라며, 회의 전에 방향을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연준 대차대조표가 국채와 주택저당증권 매입을 통해 6조7천억달러, 우리 돈 약 1경400조원 규모로 불어난 점을 지적하며 점진적인 축소 필요성도 강조했다. 양적완화는 위기 대응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이제는 금리 조정이 다시 통화정책의 핵심 수단이 돼야 하고 그 방식이 경제 주체 전체에 더 고르게 작동하는 공정한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워시 의장은 이날 인공지능 확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인공지능이 통화정책 운영과 실물경제 전반에 큰 구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면서도, 변화는 아직 초기 단계라고 평가했다. 또 새로운 기술이 기존 일자리를 줄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취임 후 첫 국제무대에 선 워시 의장이 물가 경계와 정책 유연성을 동시에 강조한 만큼, 향후 연준은 단기 유가 흐름과 기대 인플레이션 안정 여부를 지켜보면서도 실제 물가가 2% 목표를 향해 확실히 내려오는지에 따라 금리와 대차대조표 정책을 신중하게 조정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