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국내 기업 신용등급은 업종별 업황과 기업별 재무 체력에 따라 차이가 더 뚜렷해질 전망이다. 상반기까지는 수출 회복과 일부 주력 산업의 실적 개선이 신용도 방어에 힘을 보탰지만, 하반기에는 중동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 통상 환경 변화, 금리 부담, 채권시장 약세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여건이 더 까다로워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내 신용평가업계는 17일 전반적으로 하반기 기업 신용도 환경이 상반기보다 쉽지 않을 것으로 진단했다. 한국기업평가는 부정적 전망이 긍정적 전망보다 많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봤고, 사업 환경과 신용등급 전망이 모두 우호적인 업종으로는 조선을 사실상 유일하게 꼽았다. 반도체와 방위산업은 업황 자체는 양호하지만 이미 상반기에 한 차례 등급 상향이 이뤄진 기업이 있어 추가 상향 기대는 다소 차분해진 상태다. 한국신용평가도 산업 구조와 경기 흐름의 차이로 이른바 K자형 양극화, 즉 잘 나가는 업종과 어려운 업종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업종별로 보면 수출 중심 산업의 강세와 내수·소재 산업의 부진이 대비된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하반기 주요 15개 업종 가운데 방위산업, 조선, 전력기기, 전선 등 4개 업종의 신용등급 방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글로벌 수주 확대와 투자 증가, 에너지 인프라 수요가 이런 업종의 실적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석유화학, 2차 전지, 철강, 건설은 부정적으로 제시됐다. 이들 업종은 원가 부담과 수요 둔화, 업황 부진, 부동산 경기 냉각 같은 악재가 겹쳐 수익성과 재무 안정성이 동시에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유, 항공운송, 자동차, 해상운송, 디스플레이, 소매유통 등은 당장 급격한 상향이나 하향보다는 현 수준을 유지하는 안정 구간으로 분류됐다.
관심이 큰 반도체 업종에서는 SK하이닉스의 추가 등급 상향 여부가 대표적인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상반기 AA/긍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신용등급이 올라섰지만, 최고 등급인 AAA까지 곧바로 이어질지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장은 메모리반도체 업종은 변동성이 매우 큰 산업인 만큼 최고 신용등급 부여 여부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메모리반도체 업종의 신용등급 방향성도 기존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됐다. 이는 실적이 좋아졌더라도 경기 순환 폭이 큰 산업은 단기 호황만으로 최고 수준의 신용도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뜻으로 읽힌다.
결국 하반기에는 같은 업종 안에서도 기업별 차별화가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신용평가사들은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 어떤 속도로 이어질지, 환율과 지정학적 위험이 자금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내수와 부동산 경기 둔화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를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특히 현금 여력이 약하거나 차입 부담이 큰 기업은 외부 환경 변화에 더 취약할 수 있어 집중 점검 대상이 될 전망이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업황이 좋은 산업에는 선별적인 등급 방어와 상향 기회가, 취약 산업과 재무 구조가 약한 기업에는 하향 압력이 이어지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