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대다수는 반도체 같은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을 국가경제와 경제안보를 흔드는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이에 맞는 강한 처벌과 별도 법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만 19세 이상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핵심기술 해외유출 대응 관련 대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2.5%는 핵심기술 해외유출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세부적으로는 ‘매우 심각’이 62.6%, ‘심각’이 29.9%였고, 평균 점수는 10점 만점에 8.6점이었다. 이는 기술 유출 문제가 개별 기업의 영업비밀 침해를 넘어 국가 차원의 위험 요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제도 대응에 대한 요구도 뚜렷했다. 응답자의 91.4%는 미국·중국처럼 경제안보 차원에서 별도의 법체계를 갖춰 대응해야 한다고 답했고, 현재 방식으로 충분하다는 응답은 7.8%에 그쳤다. 처벌 수위와 관련해서도 90.7%가 더 강화해야 한다고 봤으며, 징역형과 별개로 범죄 이익을 웃도는 벌금이나 몰수 같은 징벌적 경제 제재를 부과하는 방안에도 90.6%가 찬성했다. 기술 유출이 적발되더라도 범죄로 얻는 이익이 처벌보다 크면 억제력이 떨어진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국민이 우려하는 피해는 국가경쟁력 약화에 집중됐다. 핵심기술이 해외로 빠져나갈 경우 가장 걱정되는 결과로는 ‘추격국가와의 기술격차 축소에 따른 국가경쟁력 약화’가 53.0%로 가장 많았고, 이어 ‘국가 안보·공급망 안정성 위협’ 19.5%, ‘글로벌 시장 점유율 하락에 따른 매출 감소’ 16.4%, ‘핵심산업 쇠퇴에 따른 일자리 감소·세수 타격’ 10.0% 순으로 집계됐다.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같은 첨단산업은 수출과 고용, 세수 전반에 파급효과가 큰 만큼 기술 유출이 산업 기반 자체를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이 같은 인식은 실제 통계와도 맞물린다. 경총에 따르면 국내 핵심기술 해외유출 적발 건수는 2021년 9건에서 2025년 33건으로 늘었고, 2020년 이후 국가경제 피해 추산액은 23조원에 달했다. 한국은 첨단산업 의존도가 높은 구조여서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2024년 기준 한국의 제조업 수출액 가운데 고도기술 제조업 수출액 비중은 36.3%로 주요 7개국, 즉 지7 평균 20.2%의 1.8배 수준이었다. 영국 29.7%, 미국 24.3%, 프랑스 23.1%보다도 높았다. 경총은 미국과 중국이 기술 유출 억제에 초점을 맞춘 독립적 처벌 체계를 운용하는 반면, 한국은 기술 보호·육성 관련 법률 안에 처벌 규정이 흩어져 있어 대응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국내 기술 해외유출 사건의 역대 최고 형량은 6년 4개월에 그쳤지만, 미국은 항공기 엔진 기술 유출 사건에서 징역 20년을 선고했고, 중국은 국가기밀을 외국 정보기관에 판매한 사건에서 사형을 선고한 사례가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기술 유출을 산업 범죄가 아니라 경제안보 범죄로 다루려는 입법 논의를 더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