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에너지 전환이 재생에너지 확대 일변도에서 원전, 대체연료, 제한적 화석연료 투자를 함께 조정하는 국면으로 들어섰다. 전력 수요 증가와 에너지 가격 부담이 맞물리면서 각국의 탈탄소 전략도 안보와 비용을 더 강하게 반영하는 흐름이다.
무디스(Moody’s)는 2026년 지속가능금융 전망에서 에너지 안보와 가격 부담이 지속가능성 전략을 이끄는 핵심 변수라고 밝혔다.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저탄소 에너지 투자와 점진적 화석연료 투자가 병행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포천(Fortune)은 라훌 고시(Rahul Ghosh) 무디스 지속가능금융·신흥시장 글로벌 총괄이 이를 '실용적 전환'으로 설명했다고 전했다. 고시는 "10년 전 세계는 일관된 기후정책을 향해 움직였지만, 지금은 다소 갈라지는 흐름이 보인다"고 말했다. 기후 명분을 앞세운 선언보다 공급 안정, 비용, 공급망 복원력이 정책의 앞줄에 섰다는 의미다.
일본은 이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사례다. 일본 총리실은 8월 26일 GX 실행회의에서 화석연료 의존도 저감, 원전 최대 활용,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 기능 강화, 차세대 혁신로 조기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퍼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와 차세대 지열, 전력망 대응도 같은 정책 묶음에 포함됐다.
일본 총리실의 7월 31일 문서는 2040년대까지 원전 2기에서 5기, 2050년대까지 11기에서 14기의 재건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일본의 전환 전략은 탈탄소 중단이 아니라 원전, 재생에너지, 대체연료를 동시에 배치하는 방식에 가깝다.
원전은 안정적 전력 공급과 탄소 배출 저감이라는 장점을 내세우지만, 건설 기간과 비용, 안전성 논란을 함께 안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보급 속도를 높일 수 있지만 전력망 보강과 저장 설비가 따라붙어야 한다. 아시아 각국이 단일 해법보다 혼합 전략을 택하는 배경이다.
싱가포르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싱가포르 통상산업부는 저탄소 발전과 산업 탈탄소 기술을 지원하기 위해 8억 싱가포르달러 규모의 탈탄소 연구·혁신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2035년 연간 배출량을 4500만~5000만 tCO2e로 낮추고 2050년 넷제로를 달성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싱가포르는 국토 여건상 대규모 재생에너지 설비를 빠르게 늘리기 어렵다. 그 대신 저탄소 발전, 산업 공정 탈탄소, 실증 연구에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전환 비용을 낮추려는 전략을 택했다. 같은 아시아 안에서도 정책 수단이 다른 이유다.
반대 흐름도 남아 있다.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는 중국, 일본, 한국, 인도네시아가 2020년 이후 석탄발전 용량을 늘렸다고 밝혔다. 같은 보고서는 네 나라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도 진행되고 있다고 적었다.
이 대목은 아시아의 전환을 후퇴나 전진 중 하나로만 정리하기 어렵게 만든다. 석탄발전은 전력 수요와 가격 안정의 압력을 반영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는 장기 탄소 감축 목표와 맞물려 있다. 전환의 속도와 경로가 국가별 전력 구조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다.
한국 독자에게는 수출과 전력비 문제가 직접 맞닿아 있다. 유럽연합(EU) 이사회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 1월 1일 완전 시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기, 수소 등 탄소집약 품목 수입에 탄소 비용을 반영한다.
CBAM은 수입품의 생산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 비용을 EU 역내 기준에 맞춰 반영하는 제도다. 탄소 배출이 많은 제조업 비중이 큰 국가에는 전력 단가와 배출량 관리가 동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 기업도 전력 조달 구조와 배출 관리 체계를 함께 살펴야 하는 환경에 놓였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9월 2일 지구 평균기온이 향후 몇 년 안에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최선 시나리오의 정점도 1.8도로 제시했다. 에너지 안보와 가격 부담이 커졌지만, 탄소 비용과 기후 리스크도 동시에 커진 셈이다.
아시아의 에너지 전환은 이제 목표의 포기보다 우선순위의 재배열에 가깝다. 원전, 재생에너지, 대체연료, 일부 화석연료 투자가 한 정책 안에서 함께 다뤄지고 있다. 각국은 전력 수요와 산업 경쟁력, 탄소 비용을 동시에 계산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