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주도권이 더 이상 인간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게 됐다. 이제 AI 에이전트들이 항공권을 예약하고, 생필품을 반복 주문하며, 구독 서비스를 선택하는 등 과거 인간의 몫이었던 일들을 독자적으로 처리한다. 과거 음성비서나 챗봇처럼 명령을 기다리는 수동적 존재와는 달리, 이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마치 능동적인 소비자처럼 움직인다. 이로 인해 디지털 마케팅 환경은 구조적인 변화를 겪고 있으며, 기존 접근 방식의 유효성이 흔들리고 있다.
AI 에이전트는 정보를 탐색하지 않고 곧바로 행동에 옮긴다. 브랜드 영상이나 사용자 경험 설계(UX)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정제된 데이터, 예를 들어 가격이나 기능 비교표 같은 구조화된 정보만을 수집하고 분석한다. 웹사이트가 아무리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하더라도, 에이전트가 판독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휴먼 사용자 중심으로 설계된 콘텐츠는 에이전트에게 잡음에 불과하다. 마케팅 담당자라면 지금이라도 자사 콘텐츠가 기계에 읽히기 쉽게 설계됐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전통적인 SEO 전략도 이들 앞에서는 무력하다. AI 에이전트는 검색 결과 자체에서 데이터를 추출하거나 API를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검색 결과 페이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의사결정을 끝마치는 이들 앞에서 키워드나 백링크 전략은 더 이상 우선순위가 아니다. 이제는 콘텐츠의 가용성과 구조화 수준이 더 중요한 평가 요소로 떠올랐다. 핵심은 '어디서 읽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읽힐 수 있게 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더불어 기존 웹 분석 지표도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페이지 체류 시간이나 이탈률 같은 수치는 에이전트의 행동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 이들은 종종 봇 트래픽으로 인식되거나, 아예 분석 대상에서 제외되기에 실제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왜곡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누가 방문했는가’보다 ‘누가 선택했는가’를 파악하는 새로운 분석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이전트가 추천 제품으로 지목했는지, 경쟁 브랜드 대신 선택했는지 등 실질적인 영향력을 측정하는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결국 마케터들은 양자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기존처럼 인간 소비자에게 공감과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함과 동시에, AI 에이전트를 위한 명확하고 구조화된 제품 정보 제공도 병행해야 한다. 사람만 바라보는 디지털 마케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에이전트를 아예 마케팅의 주요 소비 주체로 인정하고 설계의 전환기점을 맞이해야 할 시점이다.
이와 같은 변화는 단지 마케팅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웹 전체가 인간 중심에서 기계 중심 정보 설계로 재편되고 있다는 방증이며, 이 중심축이 이동함에 따라 전략, 구조, 성과 해석까지 모든 요소가 재정의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