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벤처 캐피탈 업계가 다시금 핵분열 발전에 주목하면서, 2025년 들어 해당 분야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사실상 정체됐던 원자력 발전이 최근 인공지능(AI)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에너지 수요가 치솟자 재조명을 받고 있는 양상이다. 올 한 해 핵융합을 제외한 핵분열 발전 스타트업에 유입된 투자금만 약 20억 달러(약 2조 8,800억 원)에 달한다.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기업 중 하나는 엑스에너지(X-energy)다. 고급 소형 모듈형 원자로와 핵연료 기술을 개발 중인 이 회사는 지난 11월 7억 달러(약 1조 400억 원) 규모의 시리즈 D 투자를 유치했다. 제인 스트리트 캐피탈이 주도한 이번 투자에는 아마존과 다우 에너지도 협력 파트너로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핵심 자금은 공급망 강화를 위해 쓰일 예정이다.
빌 게이츠가 창립한 테라파워(TerraPower) 역시 주목할 만한 사례다. 이 회사는 2025년 여름에 6억5000만 달러(약 9,360억 원)의 추가 자금을 유치했으며, 엔비디아(NVDA)의 벤처 부문인 NVentures가 투자에 가세했다. 테라파워는 ‘나트륨(Natrium)’이라는 고급 핵반응기에 대규모 에너지 저장 기술을 결합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으며, 내년 중 규제 당국의 승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초기 단계에서도 활발한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핵마이크로리액터를 개발 중인 2년 된 스타트업 안타레스(Antares)는 이달 초 시리즈 B 라운드에서 9,600만 달러(약 1,382억 원)를 확보했다. 또 다른 신생기업인 발라 아토믹스(Valar Atomics)는 그리드 독립형 발전 솔루션을 제공하는 소형 핵로 프로젝트로 화제를 모으며 지난달 시리즈 A에서 1억3,000만 달러(약 1,872억 원)를 유치했다. 이 회사에는 안두릴 인더스트리 공동창업자 팔머 럭키도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최근 원자로 설계 인허가 지연 문제로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출구 전략 측면에서도 성과가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옥로(Oklo)다. 이 기업은 지난 해 샘 알트먼이 설립한 스팩(SPAC)을 통해 나스닥에 상장했으며, 현재 시가총액은 약 160억 달러(약 23조 원)에 이른다. 비슷한 유형의 스팩 합병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원 뉴클리어 에너지(One Nuclear Energy)는 소형 원자로로 데이터 센터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설계된 에너지 파크 개발을 추진 중이며, 헤네시 캐피탈 인베스트먼트 Corp VII과의 합병을 통해 상장을 예고했다. 또 헤드론 에너지(Hadron Energy)는 12억 달러(약 1조 7,280억 원) 규모의 SPAC 거래로 GigCapital7 Corp.과 합병해 상장할 계획이다. 테레스트리얼 에너지(Terrestrial Energy) 역시 최근 스팩과 합병하여 ‘IMSR’이라는 상장 심볼로 나스닥에 입성했다.
정책의 변화도 산업 부활에 힘을 더하고 있다.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핵에너지 생산 비중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바이든 행정부와는 차별화된 에너지 접근을 보였다. 이 명령은 차세대 프로젝트들의 인허가 절차를 앞당기고 민간 관련 기업의 진입 장벽을 허물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번 핵에너지 붐은 1970년대 당시처럼 대형 시설을 중심으로 한 구성이 아니며, 주로 소형화, 분산화, AI 기반 수요처를 겨냥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업계와 투자자들은 이처럼 새로운 차원의 기술적·정책적 융합이 차세대 에너지 패러다임을 이끌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