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의 설계자 비탈릭 부테린이 지난 3년간 암호화폐 시장을 지배해온 금과옥조(金科玉條)를 제 손으로 깨뜨렸다. “실행은 L2(레이어2)가, 정산은 L1(메인넷)이 맡는다”던 이른바 ‘롤업(Rollup) 중심 로드맵’에 사실상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다. 주인집이 좁으니 마당에 별채(L2)를 짓고 살라던 주인이, 이제 안채(L1)를 대궐처럼 넓혀 직접 다 수용하겠다고 선언한 격이다.
그동안 이 로드맵 하나를 믿고 수조 원의 벤처캐피털(VC) 자금과 개인 투자자들의 돈이 L2 시장으로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하지만 비탈릭의 시선은 싸늘했다. 그는 “L2의 기술 진보는 예상보다 훨씬 더디고, 그사이 L1은 ZK-SNARKs 기술을 통해 스스로 빨라지고 있다”며 방향타를 급선회했다.
There have recently been some discussions on the ongoing role of L2s in the Ethereum ecosystem, especially in the face of two facts:
— vitalik.eth (@VitalikButerin) February 3, 2026
* L2s' progress to stage 2 (and, secondarily, on interop) has been far slower and more difficult than originally expected
* L1 itself is scaling,…
비탈릭의 변심은 기술적 진보라는 명분을 둘렀지만, 그 속내는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L2 생태계를 향한 준엄한 꾸짖음이다. 그는 많은 L2 프로젝트가 완전한 탈중앙화(스테이지 2)는 뒷전인 채, 규제 대응을 핑계로 운영사의 중앙화된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 한다고 직격했다. ‘이더리움의 보안을 공유한다’는 명분은 허울뿐이고, 실상은 운영사 마음대로 주무르는 ‘뒷문 열린 사설 체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우리가 ‘미래의 필수 인프라’라고 믿었던 ARB, OP, BASE, STRK 같은 주요 L2 토큰들의 실체다. 냉정하게 따져보자. 이 토큰들은 네트워크 수익이 홀더에게 귀속되는 구조도 아니고, 이더리움 보안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지도 않는다. 오직 “거버넌스 투표에 참여할 권리를 준다”는 말뿐인, 내재 가치 제로(0)의 ‘거버넌스 밈코인’에 지나지 않았다. 이더리움 본진이 직접 고속도로를 뚫고 통행료까지 낮추는 마당에, 굳이 불편하고 비싼 L2 우회도로를 이용할 명분은 사라진다. 서사가 무너진 인프라 토큰은 처분조차 불가능한 애물단지가 될 뿐이다.
비탈릭의 이번 선언은 가상자산 시장을 지탱해온 거대한 거품 하나가 꺼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VC들은 막대한 물량을 개인에게 떠넘기기 위해 ‘확장성 인프라’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동원했지만, 본진의 회군 앞에 그 모든 논리는 사상누각처럼 무너졌다.
이제 L2 프로젝트들에게 남은 길은 외나무다리뿐이다. 이더리움이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이나 서비스(프라이버시, AI 등)를 증명해내느냐, 아니면 이대로 ‘거버넌스’라는 이름의 신기루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느냐다. 분명한 것은, 이더리움이라는 거인의 그늘에 숨어 손쉽게 통행료나 챙기던 안일한 기생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