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종결은 외교관이 아니라 채권 트레이더가 결정한다. 미국 시장 평론가 쿼스 더 레이븐이 최근 내놓은 분석의 골자다. 도발적 표현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커니즘은 한국의 투자자와 정책 당국이 결코 가볍게 흘려보낼 수 없다.
미사일과 호르무즈, 보복 헤드라인에 시선이 쏠려 있던 지난 몇 달간, 정작 더 위험한 신호는 다른 곳에서 켜지고 있었다. 미국 국채시장이다. 10년물 수익률이 다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이 단 하나의 가격이 글로벌 금융의 거의 모든 자산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움직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 "워싱턴이 견딜 수 없는 단 하나의 위기"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단순한 채권 가격이 아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업용 부동산 밸류에이션, 사모펀드 모델, 회사채 발행 비용, 주식 멀티플, 벤처캐피털 평가, 그리고 미국 정부의 자금 조달 비용까지 모두 이 위에 쌓여 있다. 이 수익률이 통제 불능 상태로 오르기 시작하면, 모든 자산이 동시에 재가격된다.
워싱턴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다만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할 뿐이다. 미국은 해외에서의 정치적 망신은 견딜 수 있다. 그러나 무질서한 국채시장은 견딜 수 없다. 이 한 문장이 지금 모든 정책 판단의 배경에 깔려 있다.
■ 채권시장이 강제할 세 가지 시나리오
쿼스 더 레이븐의 진단은 분명하다.
첫째, 이란 사태의 조기 봉합이다. 우선순위는 더 이상 '승리'나 '지정학적 전략'이 아니다. 국채 수익률이 폭주하기 전에 안정을 되찾는 것이다. 고유가가 장기화되고 재정적자가 폭증하는 환경은, 이미 고금리 부담에 짓눌린 미국 금융 시스템과 양립할 수 없다.
문제는 미국이 이번 분쟁에 진입한 재정 상태가 극도로 취약하다는 점이다. 지금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이 아니다. 그때는 젊은 인구, 산업적 우위, 낮은 부채, 그리고 수십 년의 성장기를 앞두고 있었다. 지금은 평시(平時)인데도 연간 2조 달러에 가까운 재정적자를 쏟아내고 있다. 국가부채 이자 비용은 이미 연방 예산에서 가장 큰 항목 중 하나로 올라섰다. 여기에 전쟁 지출과 외국인의 미 국채 수요 약화, 원자재값 상승, 차환 비용 증가가 더해진다. 시스템 전체가 위태롭게 흔들리는 이유다.
둘째, 인플레이션이라는 우회로 없는 결말이다. 전쟁은 늘 인플레이션을 부른다. 단순히 유가 충격이나 공급망 교란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부채 창출 그 자체다. 전쟁은 차입으로 조달되고, 이 정도 규모의 차입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중앙은행의 개입을 요구한다. 전쟁이 부채를 낳고, 부채가 금융 시스템을 압박하며, 시스템은 결국 화폐 발행과 통화 가치 절하, 그리고 금융 억압(financial repression)이라는 익숙한 처방으로 회귀한다.
셋째, 역설적 시나리오다. 연준이 수익률을 누르기 전에, 오히려 한 차례 더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유가가 계속 높고 인플레이션 기대가 국채 수익률과 함께 오르는 상황에서 연준이 신뢰성을 지키려면 다시 긴축에 나설 수밖에 없다. 만약 그것도 통하지 않는다면, 결국 인플레이션 통계 자체를 '관리'하기 시작할 것이라는 게 쿼스 더 레이븐의 신랄한 전망이다.
◇ 차기 연준 의장에게 남겨진 '풀 수 없는 숙제'
그가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성장은 둔화되고, 시장은 약해지며, 차입 비용은 오르고, 인플레이션은 끈질기게 유지되는 국면. 위험자산에는 악몽이고, 차기 연준 의장 케빈 워시(Kevin Warsh)에게는 사실상 풀 수 없는 숙제다.
수년간 시장은 제로금리와 무한 유동성에 길들여져 있었다. 미국 경제의 적지 않은 영역이 '자본은 영원히 싸게 유지된다'는 가정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국채 수익률이 의미 있게 오르기 시작하면 모든 게 무너진다. 레버리지 투기는 지속이 어려워지고, 회사채 차환은 비싸진다. 주택 구입 부담은 더 깊어지고, 상업용 부동산은 추가 스트레스에 직면한다. 주식 밸류에이션은 압축된다. '에브리싱 버블(everything bubble)'에서 산소가 빠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 "결국 비용을 떠안는 것은 중산층"
쿼스 더 레이븐의 가장 날카로운 지적은 여기에 있다. 이 사이클은 늘 같은 방식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월가와 금융 시스템은 '대마불사(too big to fail)'로 간주돼 구제받고, 일반 시민은 인플레이션과 통화 가치 절하라는 형태로 비용을 떠안는다. 정책 당국은 이 개입을 늘 '금융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포장한다. 그러나 그 안정은 누구를 위한 안정인가. 레버리지에 의존한 금융 기관, 과부채 상태의 정부, 그리고 인위적으로 억눌린 금리 위에 세워진 자산시장을 위한 안정이다.
평범한 가계는 두 번 처벌받는다. 먼저 인플레이션으로, 다시 그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동원되는 정책으로.
■ 한국에는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로 굳어질 경우, 한국이 받는 충격은 미국 못지않다.
첫째, 한미 금리차의 구조적 고착이다. 미국이 부채 부담 때문에 결국 수익률 곡선 통제(YCC)나 변형된 양적완화로 회귀한다면, 한미 금리차는 단순한 정책 격차가 아니라 두 통화 시스템의 구조적 격차를 반영하게 된다. 이미 1500원대에 안착한 원·달러 환율의 하방 경직성은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 마주하는 '구조적 원화 약세'의 국면이다.
둘째, 한국 국고채 시장에 대한 직접 파급이다. 미국 10년물이 흔들리면 한국 10년물 국고채 수익률도 함께 움직인다. 1900조원을 넘은 가계부채를 떠안은 한국 경제에서 시장금리 급등은 정책 옵션을 더욱 좁힌다. 한국은행은 미국을 따라 올리지도, 가계 부담 탓에 적극적으로 내리지도 못하는 '이중 진퇴양난'에 한층 깊이 빠지게 된다.
셋째, 금과 비트코인의 동시 재평가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이 구조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수익률을 억제하는 길을 택한다면, 귀금속이 가장 명확한 수혜 자산이 된다. 법정통화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정부가 통화 안정보다 부채 지속가능성을 우선시할 때 금과 은은 가장 잘 작동해 왔다.
이 논리는 비트코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디지털 금'으로서의 비트코인 서사가 다시 부상할 매크로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가상자산 시장에서 한동안 약해졌던 '인플레이션 헤지' 담론이 이번 사이클에서 다시 핵심 화두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넷째, 스테이블코인과 미 국채 수요의 새로운 함수 관계다. 글로벌 주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보유한 미 국채 규모는 이미 웬만한 신흥국 중앙은행 수준이다. 외국인의 미 국채 수요가 약해지는 국면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새로운 '한계 매수자(marginal buyer)' 역할을 한다면, 미국 입장에서 스테이블코인 규제는 단순한 금융정책이 아니라 국가부채 관리 전략의 일부가 된다. 미국 의회의 GENIUS 법안과 CLARITY 법안이 단순한 가상자산 법안일 수 없는 이유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 역시 이 거시 맥락 위에서 다시 읽혀야 한다.
다섯째, 한국 가계 자산 구조에 대한 근본 질문이다. "정부는 결국 채권시장을 지키고 통화를 희생한다"는 명제가 사실이라면, 예금과 원화 표시 부동산에 편중된 한국 가계의 자산 구조는 가장 취약한 조합이다. 명목 자산 가격이 오른다고 해서 부(富)가 늘었다고 말할 수 없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 "역사는 다르게 끝나지 않는다"
쿼스 더 레이븐의 결론은 단호하다. 이란 전쟁은 시장의 예상보다 일찍 끝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글로벌 지도자들이 갑자기 책임감을 갖게 됐기 때문이 아니다. 채권시장이 그들을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 당국은 이제 인플레이션, 부채 상환 비용, 경기 둔화, 지정학적 분쟁이라는 네 마리 토끼 사이에서 불가능한 균형잡기를 강요받는다.
무언가는 양보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정부가 이 단계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늘 채권시장을 보호하고 통화를 희생하는 길을 택해왔다. 이번이라고 다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반론은 있다. AI 생산성 혁명이 가져올 디플레이션 압력, 달러 기축통화의 견고함, 그리고 연준의 진화된 정책 도구는 1970년대나 과거 부채위기와 지금이 다르다는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시장이 이미 이 시나리오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가 가장 무거운 신호다.
한국 투자자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내 자산은 통화가 희생되는 국면에 준비돼 있는가." 채권시장이 워싱턴에 들이미는 청구서는, 머지않아 서울의 가계 자산에도 도착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