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투자 수요가 급격히 커지면서 미국 월가의 자금 흐름이 기업 인수합병보다 AI 인프라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최근 채권시장에서는 인수합병 자금 조달을 위한 발행이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데이터센터와 전력, 반도체를 포함한 AI 관련 사업은 사실상 가장 강한 자금 흡수처로 떠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이 1일 전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주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이나포인트에서 열린 골드만삭스 연례 레버리지 파이낸스·신용 콘퍼런스에서는 AI 관련 자금 조달 논의가 시장의 중심 의제로 부상했다. 이 행사는 투자 임원 약 400명과 차입 기업 85곳이 참석하는 비공개 회의로, 월가에서 채권 발행과 기업대출의 방향을 가늠하는 대표적인 현장으로 꼽힌다. 전통적으로 인수합병 금융 논의가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이번에는 AI가 그 자리를 사실상 대신한 셈이다.
실제 조달 규모도 크다. AI 관련 기업들은 최근 두 달 동안 미국 정크본드 시장에서 200억달러, 우리 돈 약 29조원 이상을 끌어모았다. 정크본드는 신용등급이 낮아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채권을 말하는데, 그만큼 투자자들이 높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AI 성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신용도가 높은 대형 우량기업들도 자금 조달 창구를 넓히기 위해 미국 밖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블랙스톤과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는 앤트로픽의 AI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기 위한 360억달러, 약 52조4천억원 규모 거래에 추가 투자자를 모으고 있으며, 앤트로픽은 같은 날 기업공개를 위한 예비 서류를 비공개로 제출했다고 밝혔다.
금융권에서는 이런 흐름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AI 생태계를 뒷받침하는 실물 투자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골드만삭스 글로벌 레버리지 파이낸스 총괄 미리엄 휠러는 데이터센터와 전력, 반도체 전반에 걸친 자본지출 수요가 워낙 커서 자신들이 관여하는 거의 모든 금융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발행된 회사채 상당수가 비슷한 가치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지만, 시장이 계속 같은 가격을 허용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앞으로는 옥석 가리기가 더 뚜렷해질 가능성이 크다. 공급이 과열되거나 AI 설비 투자가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나면, 실제 공사 일정과 사업 집행 능력을 맞추지 못하는 기업부터 자금 조달 비용이 높아질 수 있다. 골드만삭스의 미주 레버리지 파이낸스 총괄 크리스 보너는 결국 실행력에서 뒤처지는 기업이 더 비싼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AI 생태계에 필요한 자금 규모 자체가 워낙 큰 만큼, 월가의 자금 쏠림은 당분간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기업금융 시장에서 인수합병보다 AI 인프라 투자가 더 강한 우선순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