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상업 선박 통행을 다시 허용한다고 밝히면서 국제 유가는 하루 만에 11% 넘게 급락했다. 중동의 대표적 에너지 수송로를 둘러싼 긴장이 다소 완화됐다는 인식이 퍼지자, 그동안 유가에 붙어 있던 전쟁 프리미엄(지정학적 불안 때문에 추가로 반영된 가격)이 빠르게 걷힌 것이다.
17일 미국 동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 가격은 전장보다 10.84달러, 11.45% 내린 배럴당 83.8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최근월물 종가 기준으로는 지난달 10일 이후 약 5주 만의 가장 낮은 수준이다. 장중에는 80.56달러까지 밀리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오후 3시 23분 기준 페르시아만에 머물던 선박 약 20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바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장은 실제 선박 운항 재개 움직임을 확인하면서 공급 차질 우려를 빠르게 낮춰 잡는 분위기였다.
직접적인 계기는 이란의 발표였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부 장관은 레바논에서 휴전이 발표된 데 따라 휴전이 유지되는 동안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모든 상업 선박의 통행을 전면적으로 자유화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휴전은 미국 동부시간 기준 전날 오후 5시부터 시작됐고, 기간은 열흘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 발표 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는 봉쇄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언급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지나는 길목이어서, 이 지역의 통행 제한 여부는 곧바로 국제 에너지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시장의 안도감이 완전한 상황 종료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봉쇄를 풀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지난 13일부터는 이란 항구를 오가는 선박을 차단하고 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에 따르면 에스마일 바가이 대변인은 미국의 이런 조치를 휴전 위반으로 간주한다며, 상황이 계속되면 이란도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시 말해 이란이 통행 허용 방침을 밝혔더라도, 미국과 이란의 대치가 이어지는 한 해협 운항이 언제든 다시 흔들릴 가능성은 남아 있다. 실제로 시장 전문가들도 현재 허용된 항로가 이란 연안 쪽에 제한된 것일 수 있다며, 이를 완전한 의미의 전면 개방으로 보기에는 이르다고 평가한다.
향후 유가 흐름은 결국 미국과 이란의 추가 협상 결과에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리스크 매니지먼트의 아르네 로만 라스무센 수석 애널리스트는 시장이 이미 전쟁과 호르무즈 봉쇄가 사실상 끝난 쪽으로 가격을 반영하고 있다고 봤지만, 라피단 에너지그룹의 스콧 모델 최고경영자는 설령 몇 주 안에 합의가 나오더라도 물동량이 완전히 정상화되기까지는 6월, 늦으면 7월까지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핵심 쟁점으로는 고농축 우라늄 처리 방식, 우라늄 농축 중단 기간, 호르무즈 해협 운영 방식 등이 거론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주말 회담 가능성을 언급하며 하루 이틀 안에 합의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지만, 실제 협상 내용이 확인되기 전까지 국제 유가는 안도와 경계가 엇갈리는 큰 변동성을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