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상선 통항 제한을 한시적으로 풀겠다고 밝히자 국제 유가가 17일 큰 폭으로 떨어졌다. 중동 충돌로 막혀 있던 핵심 원유 수송로가 다시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면서, 그동안 전쟁 위험을 반영해 치솟았던 유가가 빠르게 되돌림을 보인 것이다.
이날 미 동부시간 오전 9시 18분 기준으로 ICE선물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은 전장보다 10.2% 내린 배럴당 89.24달러에 거래됐다. 브렌트유가 배럴당 90달러 아래로 내려온 것은 지난 3월 11일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같은 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 즉 더블유티아이는 11.3% 하락한 배럴당 83.99달러를 나타냈다. 국제 유가의 대표 지표인 브렌트유와 더블유티아이가 동시에 두 자릿수에 가까운 낙폭을 보인 것은 시장이 지정학적 긴장 완화를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번 하락의 직접적인 계기는 이란의 발표였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17일 엑스 계정을 통해 이스라엘과 레바논 사이의 휴전 상황을 반영해 남은 휴전 기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모든 상선의 항해를 전면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10일간 휴전은 미 동부시간 16일 오후 5시, 한국시간으로는 17일 오전 6시를 기해 공식 발효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날 트루스소셜에 양국 정상과의 통화를 통해 휴전 합의를 끌어냈다고 밝힌 바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사실상 병목 지점으로 꼽힌다.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즉 엘엔지 해상 수송량의 약 20%가 이 해역을 지난다. 그래서 이곳의 봉쇄나 통항 제한은 실제 공급 차질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시장에 즉각적인 불안 심리를 불러온다. 미·이란 전쟁 발발 이후 이란의 해협 봉쇄는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의 핵심 배경으로 작용해왔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통행 재개 소식이 공급 불안 우려를 누그러뜨리며 유가를 끌어내렸다.
앞으로 유가 흐름은 휴전이 실제로 유지되는지, 그리고 이란의 통항 허용 조치가 단기 선언에 그치지 않는지에 따라 다시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은 당장 공급 차질 위험이 낮아졌다고 보고 있지만, 중동 정세 특성상 긴장이 재확대되면 유가 변동성도 다시 커질 수 있다. 결국 이번 급락은 전쟁 프리미엄이 일부 걷힌 결과이지만, 향후 국제 유가는 휴전 지속 여부와 해상 물류 정상화 속도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