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 IPO 시장이 점차 활기를 되찾고 있는 가운데, 바이오텍 스타트업들만은 여전히 찬 바람 속에 머물러 있다. 2025년 들어 지금까지 나스닥이나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미국 바이오텍, 신약 개발, 의료기기 스타트업은 불과 16곳에 그쳤다. 이는 최근 수년 사이 IPO 시장이 기록한 가장 저조한 수치 중 하나로, 투자자들이 이 분야에 대해 한층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 같은 부진은 단기간의 글로벌 경기 여건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추진된 일련의 정책 변화가 업계 전반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예산 삭감에 따른 공공 연구 자금 축소,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관련 보건 당국의 지도부 교체, 그리고 약가 정책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벤처캐피털들이 바이오와 메드테크 분야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상장 이전 단계의 자금 유치 환경도 급격히 얼어붙었다.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에 따르면 2025년 들어 현재까지 미국의 바이오텍, 제약, 의료기기 스타트업이 유치한 초기부터 성장 단계에 이르는 투자 총액은 약 160억 달러(약 23조 원)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5%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팬데믹 기간 고점을 찍었던 몇 해 전의 투자 수준과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다만 희망의 불씨는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비록 IPO 건수는 줄었지만, 상장 기업들의 평균 기업 가치 규모는 높아지는 추세다. 올해 신규 상장 중 25%는 기업 가치 10억 달러(약 1조 4,400억 원) 이상을 기록한 대어급 IPO였으며, 지난 7월 상장한 정밀의학기업 카리스 라이프 사이언스는 상장 직후 기준 약 90억 달러(약 13조 원)의 시장 가치를 인정받았다. 호르몬 치료제를 개발하는 뉴욕 소재 메트세라, 관상동맥 질환 진단 기술로 주목받은 하트플로우 등도 각각 33억 달러(약 4조 8,000억 원), 24억 달러(약 3조 4,000억 원)의 밸류에이션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대형 IPO만으로는 미국 바이오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지탱할 수 없다. 막대한 R&D 비용과 임상시험 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초기 기업들에게 있어 증시 상장은 핵심 자금 조달 수단이자 성장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보고 있다. 바이오 전문 벤처캐피털인 아틀라스 벤처의 파트너 브루스 부스는 최근 블로그를 통해 “IPO 시장이 닫히고 FDA는 혼란에 빠졌으며 NIH(미국국립보건원)의 예산은 대폭 삭감됐지만, 바로 지금이 새로운 바이오텍 기업을 창업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신생 기업 수가 줄어듦에 따라 유능한 인재 및 자원 확보 측면에서 경쟁이 한층 완화되고 있다는 분석에 기반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바이오와 헬스테크 산업이 여전히 근본적으로 가치 있는 분야임을 상기시킨다. 투자자들이 일시적 위기를 넘어 중장기 비전을 공유할 수 있다면, 미국 바이오 스타트업 시장은 다시 한 번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