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주 급락이 인공지능 투자 수익성에 대한 의문과 금리 인상 우려, 레버리지 상품발 매도 압력까지 한꺼번에 겹치면서 미국과 아시아 증시 전반으로 빠르게 번졌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증시에서 나스닥 종합지수는 2.2%,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4% 내렸고,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7.87% 급락했다. 엔비디아는 4.1% 하락해 시가총액이 5조달러 아래로 내려왔고, 마이크론과 퀄컴도 각각 13.2%, 8.0% 떨어졌다. 하루 전까지 반도체주가 기록적인 강세를 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낙폭은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주가 상승을 이끌었던 인공지능 기대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는 질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조정의 첫 번째 배경은 인공지능 투자에 대한 회의론이다. 알파벳과 아마존, 메타 같은 대형 기술기업들은 향후 5년간 수천억달러를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에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투자자들은 이제 얼마나 큰 돈을 쓰는지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익이 돌아오는지를 더 따지고 있다. 인공지능 모델이 빠르게 범용화되면 특정 기업만 독점적으로 높은 수익을 누리기 어렵고, 결국 서비스 가격 경쟁이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쉽게 말해 미래 성장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지금의 높은 주가를 정당화할 만큼 돈을 벌 수 있느냐는 의문이 커진 셈이다.
두 번째 충격은 금리다.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중동 분쟁에 따른 물가 상승 가능성에 대응해 금리를 올릴 뜻을 시사했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연준이 2026년 9월부터 연말까지 세 차례에 걸쳐 모두 0.75%포인트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선물 시장도 10월 0.2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이미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금리가 오르면 미래 이익 기대를 바탕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성장주가 먼저 흔들리기 쉽다. 특히 반도체 업종은 경기 흐름에 민감한 데다 대규모 설비 투자 부담도 커 긴축의 영향을 더 직접적으로 받는 업종으로 꼽힌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이달 들어 0.04%포인트 오른 4.5%를 기록한 것도 기술주 전반에는 부담 요인으로 작용했다.
세 번째 변수는 한국 시장에서 불거진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청산 압력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2배로 추종하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주가가 급락할 때 목표 배율을 맞추기 위해 기초자산을 기계적으로 더 팔아야 한다. 이런 구조가 하락장에서 매도를 키우는 악순환을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 상품의 합산 자산은 5월 말 4조6천억원에서 23일 기준 약 14조원으로 불어났고, 보유자의 92%는 개인 투자자였다. 골드만삭스는 코스피가 5% 움직이면 옵션 딜러들의 헤지 조정만으로 약 47억달러, 우리 돈 약 7조2천억원 규모의 리밸런싱 물량이 나올 수 있다고 추정했다. 실제로 코스피는 23일 전 거래일보다 910.71포인트(9.99%) 내린 8,203.84로 마감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했다.
시장 전망은 엇갈린다. 미국 투자은행 비티아이지(BTIG)는 반도체 업종이 여기서 10~15% 더 밀릴 가능성을 거론했고, 일부 전략가들은 과열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본다. 반면 큰 폭 조정이 오히려 매수 기회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미 올해 누적 상승률이 높았던 종목들인 만큼 단기 급락이 거품을 덜어내는 과정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인공지능 투자에 따른 실제 실적이 확인되는지, 그리고 미국 금리 경로가 얼마나 더 매파적으로 바뀌는지에 따라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은 기대만으로 오르던 장세에서 수익성과 자금조달 여건을 더 엄격하게 따지는 장세로 무게중심이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