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올해 큰 폭으로 올랐는데도 시장이 매긴 평가 가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시기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블룸버그통신은 12일 현지시간 보도에서 지난 9일 기준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향후 1년 예상 이익 대비 주가 수준)이 6.35배로 집계됐다고 전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0월 26일의 6.82배보다도 낮다. 지난해 10월 27일 기록한 최근 52주 최고치 11.98배와 비교하면 사실상 반 토막 난 셈이다. 주가수익비율은 숫자가 낮을수록 시장이 기업 이익에 비해 주가를 보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눈에 띄는 점은 주가와 밸류에이션이 반대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코스피는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 기대에 힘입어 77% 급등했다. 그런데도 밸류에이션이 낮아진 것은 투자자들이 더 비싼 가격을 용인해서 오른 장세가 아니라, 기업 이익 전망이 훨씬 더 빠르게 상향 조정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들어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주식 1주당 예상 순이익) 추정치는 약 170% 높아졌고, 이는 2006년 이후 가장 큰 상승률이다. EPS 추정치가 17개월 연속 상향된 것도 9년여 만에 가장 긴 기록이다.
그럼에도 한국 증시는 여전히 다른 반도체 중심 시장보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코스피 밸류에이션은 비슷하게 반도체 비중이 큰 대만 자취안지수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 블룸버그는 한국 증시가 오랜 기간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묶여 있었다고 짚었다. 이는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불신과 함께, 코스피 시가총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실적이 메모리 반도체 경기 순환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이 할인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실적이 좋아도 그 흐름이 오래갈지에 대한 의구심이 주가 평가를 눌러온 셈이다.
시장 참가자들의 해석은 엇갈린다. 인도수에즈 웰스 매니지먼트의 프랜시스 탄 아시아 수석전략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비중이 지나치게 크지 않은 투자자라면 인공지능 관련 성장 테마에 연결된 종목을 담기 좋은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삭소마켓의 차루 차나나 수석투자전략가는 한국 시장이 정말 재평가되려면 메모리 슈퍼사이클, 즉 반도체 호황이 계속 이어진다는 더 분명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싸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매수에 나서기에는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는 의미다.
향후 관전 포인트도 뚜렷하다.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의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의 밸류에이션 격차를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반대로 중국 창신 메모리 테크놀로지(CXMT) 등 경쟁사의 추격과 반도체주의 큰 주가 변동성은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결국 코스피의 낮은 밸류에이션이 해소되려면 단기 실적 개선을 넘어 반도체 업황의 지속 가능성과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신뢰 회복이 함께 확인돼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