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일 원화 국제화 로드맵을 내놓으면서, 앞으로 외국인은 자국의 현지 은행에서 원화계좌를 개설해 다른 외국인과 자유롭게 원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이는 원화를 한국 안에서만 주로 쓰는 통화에서 해외에서도 비교적 자유롭게 거래되는 통화로 넓히려는 조치로, 외국인의 원화 자산 투자 문턱을 낮추겠다는 뜻이 담겼다.
이번 방안의 핵심은 한국은행에 역외원화결제망을 새로 구축해 2027년 1월부터 24시간 가동하는 데 있다. 정부 구상대로라면 미국에 있는 외국인이 뉴욕의 자국계 은행에서 원화계좌를 만든 뒤, 같은 방식으로 계좌를 가진 다른 외국인과 시간 제약 없이 거래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한국 금융시장 운영시간과 환전 가능 시간의 제약이 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이나 국채에 투자하려 해도 밤 시간대 원화 조달이 쉽지 않았는데, 정부는 이런 불편을 줄이는 것이 원화 국제화의 출발점이라고 보고 있다. 역외원화결제기관은 인가제가 아니라 등록제로 운영해 시장 진입 부담도 낮출 계획이다.
정부는 결제 인프라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외국인 관련 외환 규제도 손질하기로 했다. 외국인 대상 원화자금 대출 같은 자본거래의 사전 신고 기준 금액을 2배 이상 높이고, 지금의 사전신고 중심 체계도 단계적으로 사후보고 중심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한다. 야간에 원화가 모자라는 상황에 대비해서는 외국 금융기관이 일시 차입을 통해 결제에 필요한 원화를 제한 없이 조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한다. 더 나아가 한국은행이나 외국환평형기금을 통한 유동성 공급 방안도 2단계 대책으로 검토한다. 쉽게 말해, 외국인이 원화를 쓸 수는 있지만 막상 필요한 순간에 조달이 어렵다면 국제화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결제와 유동성을 함께 풀겠다는 구상이다.
외국인의 한국 주식·채권 투자 여건을 개선하는 작업도 병행된다. 정부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시장 접근성 평가 과제 25개 가운데 22개를 마쳤고, 남은 증권거래·결제 자동화 인프라 구축, 투자자 등록 개선, 영문 공시 확대도 올해 하반기나 내년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오는 9월에는 외국계 금융기관의 원화 증권 결제와 관련한 차입 제한 완화 방안도 내놓는다. 여기에 외국인이 들고 있는 원화 채권을 담보목적 대차거래(채권을 빌려주고 담보를 받는 거래) 등에 더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일시적으로 보유한 원화를 단기상품에 운용할 수 있는 길도 넓힌다. 정부는 국내 기업의 무역대금 결제에서 원화 사용을 늘리기 위해 금리와 무역보험 한도 우대도 추진하고, 인도네시아와 2024년 출범한 현지통화 직거래 체계(LCT·양국 통화로 직접 결제하는 방식)를 다른 교역국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디지털 자산과 외환 안전판 정비도 함께 추진된다. 정부는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유통·거래 근거를 마련하고, 한국은행의 기관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연계한 국채 토큰화 실증 사업을 내년에 추진할 계획이다. 또 국제 공동 프로젝트인 프로젝트 아고라에도 정식 멤버로 참여해 디지털 국경 간 지급결제 체계 구축에 힘을 보탠다. 동시에 공공부문 외화자산을 유사시 외화 유동성 공급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제2의 외환보유액 개념도 도입해 외환시장 충격에 대비한다. 그동안 한국의 외환정책이 위기 예방에 무게를 두고 자본 이동을 조심스럽게 관리해 왔다면, 이제는 주식시장 규모 확대와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 같은 시장 위상 변화를 바탕으로 원화 국제화의 이익까지 적극적으로 노리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튼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외국인의 원화 보유와 국내 자산 투자를 늘리는 기반이 될 가능성이 있지만, 동시에 역외 시장 확대에 따른 변동성 관리 체계를 얼마나 촘촘히 갖추느냐가 정책 성패를 가를 변수로 남을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