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 셰브론(Chevron)이 AI와 클라우드 전략을 바탕으로 디지털 전환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해양 석유 탐사와 개발 과정 전반에 AI 기반 데이터 분석과 모듈형 시스템을 접목하면서, 단순 정보 처리 수단을 넘어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 동력으로 전환해 나가고 있다.
셰브론은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MSFT), SLB와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 프로젝트를 출범시키며 대대적인 클라우드 현대화에 들어갔다. 이들은 SLB의 DELFI 플랫폼에 애저(Azure) 기반 앱을 통합해 방대한 에너지 탐사·개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시각화하는 환경을 구축했다. 결과적으로 셰브론은 복잡한 해저 지형에서도 수십 페타바이트 규모의 데이터를 정밀하게 분석하며 효율적이고 안전한 작업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됐다.
클라우드 기반 전환은 실제 운영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셰브론의 엔터프라이즈 AI 총괄 스티브 보우먼(Steve Bowman)은 “데이터는 모든 AI 활용 사례의 궁극적 가속기”라며 “DELFI 플랫폼 및 HPC 도구를 활용해 기존 30일 이상 걸리던 딥워터 시추계획 수립을 하루 이내로 단축했다”고 밝혔다. 아르헨티나 사례에서는 8공 시추 패드 계획 기간을 2주에서 단 하루로 줄여 AI 기반 의사결정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또한 데이터 검색에 소요되던 비효율적 업무 관행도 개선됐다. 과거 일부 심해작업 부서는 전체 근무 시간의 75%를 데이터 탐색에 할애했지만, 최신 시스템 도입 이후 속도와 정확성이 눈에 띄게 향상되고 있다. 특히 FDPlan, DrillPlan, DrillOps 같은 솔루션 덕분에, 다양한 팀들이 고도화된 지질 모델링과 시추 계획 수립, 현장 운영 등에 필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확보하고 있다.
셰브론은 이 같은 시스템 전환을 단순한 기술 개선이 아닌 조직 전체의 ‘디지털 체질’ 전환으로 접근하고 있다. AI 모듈을 중심으로 한 구조 설계를 통해 사용자가 개별적으로 직면한 문제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기능을 조합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컨대 단순 검색 요청에서 출발한 기능도 복잡한 기술적 비교분석 에이전트와 이를 통합·제어하는 오케스트레이터 에이전트까지 단계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작업 현장에서의 판단력과 대응력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Chevron Assist’라는 이름의 챗봇 시스템은 건강·안전·환경(HSE) 기준을 자연어 인터페이스로 통합, 문서 검색에 따른 시간 낭비를 없애고 실제 업무 흐름에 필요한 모든 기준을 사용자 관점에서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보우먼은 “문제를 개별 사용자 시각에서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근본적인 가치 창출의 출발점”이라며, AI 도입의 방향성이 결국 현장 중심의 실질적 업무 혁신임을 강조했다.
셰브론은 증명 위주의 기술 도입에서 벗어나 실제 적용을 우선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보우먼은 “잘 설정된 데이터셋과 열정적인 사용자 집단이 있다면 POC(개념 증명)는 실패 확률이 거의 없다”며, “중요한 것은 그것이 셰브론의 재무성과와 직결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실제 현장 운용을 통해 효과를 검증하고 확산하는 방식이야말로 급변하는 산업환경에서 AI 경쟁력을 확보하는 최선의 전략이라는 판단이다.
한편, 그는 차세대 기술 활성화 과정에서 신뢰 형성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현장 기술자와 사용자가 시스템을 제대로 신뢰하지 못하거나 불안감을 느낀다면 완전한 확산은 어렵다”고 언급하며, 기술적 완성도와 더불어 사용자 수용성과 신뢰 구축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라우드 전환에서 시작된 셰브론의 이 같은 변화는 단지 디지털화에 그치지 않고, 전사적 AI 전략 실행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효율성 증대와 시간 절감은 물론, 사용자 중심 설계를 통해 본질적인 업무 혁신 체계를 마련하고 있는 셈이다. 석유·가스 산업이라는 전통 제조업의 영역에서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기술이 실질적 수익성과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는 점에서, 셰브론의 사례는 AI 전환을 고민하는 모든 산업군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