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코(CSCO)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개최한 연례 컨퍼런스 'WebexOne 2025'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생산성 중심의 AI 진화'였다. 이번 행사에서는 단순한 챗봇 수준을 넘어 실제 업무를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에이전트 기반 인공지능 개발이 시스코의 핵심 비전으로 제시됐다. 기업 생산성 향상의 중심축이 개인이 아닌 ‘협업과 자동화된 워크플로우’로 옮겨간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투 파텔(Jeetu Patel) 최고제품책임자는 키노트 연설을 통해 “AI는 이제 사람이 아닌 AI 간 상호작용, 즉 에이전트 간 자율 협력이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작년까지 강조했던 ‘거리의 제로(Distance Zero)’ 개념에서 올해는 ‘커넥티드 인텔리전스(Connected Intelligence)’로 시스코의 비전이 확장됐다. 이는 사람과 AI 에이전트가 함께 일하는 미래형 사무공간을 위한 전략이다.
이번 행사에서 공개된 Webex 전용 AI 에이전트는 이러한 전략을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성과물이다. 대표적으로 ‘태스크 에이전트(Task Agent)’는 회의 내용을 분석해 실행 항목을 자동 생성하고 지라(Jira) 등 타사 앱과 연동해 작업 지시를 수행한다. ‘기록 에이전트(Notetaker Agent)’는 실시간 회의 내용을 요약·기록하며 즉석 회의에서도 활용 가능하다. 이외에도 일정 자동 조율부터 통화 응답까지 처리하는 AI 리셉셔니스트도 포함됐다.
시스코의 전통적 강점인 디바이스 또한 대대적인 업그레이드가 이뤄졌다. 신형 기기 운영체제 ‘RoomOS 26’은 엔비디아(NVIDIA) 칩 탑재를 기반으로 했으며, AI 지원 마이크와 자동 카메라 구동 시스템을 통해 물리적 회의공간을 혁신하고 있다. 특히 센서와 카메라를 활용해 회의실을 디지털 트윈화하는 기능은 기업의 공간 운영 효율을 대폭 높인다.
Webex Control Hub에 통합된 ‘AI 캔버스(Canvas)’ 역시 주목받은 발표 가운데 하나다. 이는 네트워크, 보안, 관측성까지 통합된 IT 운영 환경에서 문제 해결을 협업 기반 프로세스로 전환한다. 특히 시스코가 인수한 스플렁크(Splunk)와의 연결은 대규모 인프라에서 실시간 통합 진단을 가능하게 만든다.
컨택센터 전용 'AI 품질관리(AI Quality Management)'도 최초로 도입됐다. 이는 인간 상담사와 AI 에이전트 모두를 하나의 화면에서 품질관리하는 기능으로, AI 기반 고객센터 운영이 일반화되어 가는 흐름에 시스코가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는 평이다.
올해 WebexOne의 분위기는 전년과 확연히 달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AI 기술에 대한 소개와 미래 가능성 강조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즉시 실행 가능한 AI 솔루션'이 주류를 이뤘다. 실제 행사에 참석한 복수의 기업 관계자들은 “이제는 더 이상 AI를 도입할지 고민하는 시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시스코는 한동안 UCaaS(통합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및 CCaaS(컨택 센터 서비스) 시장에서 주요 경쟁사에 밀려 존재감이 약화됐지만, AI가 주도하는 새로운 생태계 재편 속에서 반전의 기회를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보안, 네트워크, 관측성, 협업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해 독자적인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은 이제 어디까지 실현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한편, 이번 키노트의 시작은 지난 9월 별세한 제이 파텔(Jay Patel) 전 컨택센터 총괄 부사장에 대한 추모 메시지로 문을 열었다. 인수합병으로 합류한 이후 고객 중심 철학을 시스코에 확산시킨 인물로 알려진 그는 이번 행사에서도 여러 발표 속에서 자연스럽게 회고될 만큼, 업계 전반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