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으로부터 중국 반도체 공장에 미국산 장비를 수출할 수 있는 승인을 받았다. 이번 조치는 당분간의 안정적인 설비 운용을 가능하게 하지만, 2027년 이후에는 매년 신규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앞서 2022년 조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으로의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을 제한하는 정책을 도입하며, 이를 위한 유일한 예외로 ‘검증된 최종 사용자(Validated End User, VEU)’ 제도를 마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제도 아래에서 예외 허가를 받았지만, 지난 8월 트럼프 행정부가 VEU 자격을 취소하면서 장비 수출에 급제동이 걸린 바 있다. 만약 이번에 미 당국의 신규 수출 승인을 받지 못했다면 양사는 중국 내 메모리 생산라인 업그레이드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세계 1위, SK하이닉스는 D램 최대 생산업체로서, 양사의 수출 제한은 메모리 반도체 공급망 전체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사안이었다. 특히 이번 조치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뻔한 미국 장비 제조사들도 한숨을 돌리게 됐다. 대표적인 예가 램리서치(LRCX)로, 이 회사가 제조하는 유전체 식각 장비는 전력 누설을 줄이기 위해 낸드 플래시 내부 절연 구조를 설계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로 꼽힌다.
램리서치는 최근 저온 공정 기반의 차세대 유전체 식각 기술을 선보였으며, 전 세계 주요 메모리 업체들이 이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다른 핵심 장비 업체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도 HBM 등 고부가가치 메모리 부품 생산에 필요한 TSV(실리콘관통전극) 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TSV는 메모리 회로를 수직 적층해 처리속도를 높이는 기술로, HBM 제조 공정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정교한 공정이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이 기술의 토대를 구축한 업체로서 HBM용 트랜지스터 및 데이터 처리 회로 생산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한편, 이번 조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 아니라 대만 TSMC가 운영하는 중국 팹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재로선 TSMC에 대한 적용 여부는 불확실하다. 미국 정부는 8월 VEU 자격을 박탈한 이후, 중국 내 반도체 생산 통제를 강화하는 흐름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번 수출 승인으로 삼성과 SK하이닉스는 당장의 생산 차질은 면했지만, 해마다 신규 승인을 신청해야 하는 불안정한 체제가 유지되는 만큼 중장기적인 설비 투자와 전략 수립에는 여전히 제약이 따를 전망이다. 이와 같은 규제 환경 속에서 장비 공급사와 메모리 업체 모두 향후 대중국 전략 재조정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