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벤처 시장에서 인수합병(M&A) 열기가 다시 고조되며, 스타트업 인수 경쟁이 2026년에도 한층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AI와 사이버보안 분야를 중심으로 인재와 기술을 빠르게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기술 경쟁력’과 ‘기술 인수(i.e. acqui-hire)’가 M&A의 핵심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Crunchbase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약 2,300건의 벤처 투자 기반 M&A 거래가 이뤄졌으며, 이 가운데 거래 금액이 공개된 값만 약 2,140억 달러(약 307조 4,0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2024년 대비 91% 급증한 수치다. 미국 시장이 이 중 73%를 차지하며 M&A 중심축 역할을 했는데, 총 1,300건의 거래로 누적 금액이 1,570억 달러(약 225조 8,000억 원)에 달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견인한 대표 사례는 구글(GOOGL)의 클라우드 보안 스타트업 위즈(Wiz)에 대한 320억 달러(약 460조 8,000억 원) 인수로, 이는 M&A 역사상 벤처 투자 기반 미국 스타트업 중 가장 큰 규모다. 이어 네이버파이낸셜의 두나무 인수(103억 달러, 약 148조 3,000억 원), 써모피셔의 클라리오 인수(88억 7,000만 달러, 약 127조 7,000억 원) 등 대형 거래가 잇따랐다. 2025년 유니콘 회사를 대상으로 한 M&A는 총 36건, 누적 가치 670억 달러(약 96조 5,000억 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M&A가 단순한 지분 확보에 그치지 않고 기술과 인재를 빠르게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해석된다는 점이다. 특히 AI 분야는 경쟁이 극심해지며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인수하는 ‘과감한 베팅’이 늘고 있다. EY-파르테논 아메리카스의 루카스 회바르트는 “단순한 구조조정용 매각이 아니라, 기술 주도형 전략이 시장을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주주이자 상장기업인 트럼프 미디어앤드테크놀로지그룹(TMTG)도 주목을 받았다. 이 회사는 2025년 12월, 핵융합 기술 전문기업 TAE 테크놀로지스와 주식 교환 방식으로 합병을 발표했는데, 거래 규모는 60억 달러(약 86조 4,000억 원) 이상으로 평가된다. 핵융합과 소셜미디어라는 이질적인 조합이지만, ‘기술 성장과 자본 시장에서의 레버리지 극대화’라는 전략적 배경이 시장의 이목을 끌었다.
인수합병 동력으로는 IPO 시장 회복과 맞물린 이중 전략(dual-track strategy)을 빼놓을 수 없다. KPMG의 아누지 바할은 “잘 작동하는 IPO 환경은 M&A를 오히려 촉진시킨다”며 “공개 상장의 위협 요소가 협상에서 유리한 카드를 제공하고, 상장 직후 풍부한 현금 유동성을 바탕으로 신속한 외부 성장에 나서는 것도 일반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M&A 시장이 기술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평가 기준도 바뀌고 있다. 기존의 수익 배수나 EBITDA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인재와 IP(지적재산권)의 전략적 가치를 우선시하는 추세가 보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특히 Sagie Capital Advisors의 잇타이 사기 대표는 “AI 비즈니스와 비AI 비즈니스 간 M&A 가격 형성이 이중 시장 구조로 나뉘었다”고 말했다. 그는 “AI는 인재와 알고리즘 가치를 중심으로, 그 외 산업은 여전히 공공시장에서 파생되는 수익 배수 모델이 주요 기준”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기술 혹은 인재 확보 목적 이외에도 자금난을 피하기 위한 차선책으로 M&A를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25년 벤처 투자 시장에서는 투자 라운드 축소와 다운라운드 빈발이 이어졌고, 이를 피하기 위한 조치로 M&A가 늘었다는 분석이다. EY 자료에 따르면 올해 진행된 스타트업 투자 거래 중 약 16%가 다운라운드로 집계됐으며, 많은 창업자는 과도한 지분 희석을 피하기 위해 매각에 나섰다.
2026년 전망에 대해 전문가들은 시장 회복과 기술 기업의 성장 기대감을 기반으로 소폭 증가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EY-파르테논은 미국 내 M&A 거래 건수가 내년 3%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바할은 “통화 완화정책, 규제 측면에서의 우호적 환경, 기술 주도 성장 산업의 연속성 등이 낙관론의 핵심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불확실성도 여전히 존재한다. 금리 인상 지속 가능성, AI에 대한 과열 우려, 지정학적 긴장, 대외 규제 강화 등이 결합되면 시장은 다시 관망세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Sagie는 “기술이 무너져 M&A가 침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자신감이 꺾일 때 투자가 멈춘다”고 분석했다.
결국 2026년 M&A는 ‘기술과 인재’에 대한 확신, 경제 환경의 안정성, 그리고 투자자들의 자신감 회복 여부에 달려 있다. AI와 사이버보안, 그리고 전초기지 단계 스타트업에 대한 매수 경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 흐름이 어떤 형식으로 정점에 다다를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