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암 소프트웨어 그룹이 이번 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비암온 2026’에서 대대적인 방향 전환을 공식화했다. 핵심은 단순한 백업·복구 기업을 넘어, 기업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을 함께 관리하는 ‘데이터·AI 신뢰’ 플랫폼으로 진화하겠다는 것이다.
아난드 에스와란 최고경영자와 레한 잘릴 제품·기술 부문 사장은 앞으로의 기업 인프라 경쟁력이 ‘얼마나 빨리 복구하느냐’보다 ‘AI가 데이터를 다뤄도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진단했다. 기존 보안과 운영 체계가 사람 중심으로 설계된 만큼,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AI 에이전트 시대에는 새로운 통제 계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AI 에이전트 확산, 기업 통제 체계 흔든다
비암은 현재 대기업 환경에서 비인간 계정인 AI 에이전트가 사람보다 평균 82배 많고, 조직당 25만개를 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중 97%가 과도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에이전트가 오작동하거나 탈취될 경우 피해 범위가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에스와란은 이제 위협의 성격이 달라졌다고 봤다. 과거에는 ‘복구를 전제로 한 백업’, 이후에는 ‘침해를 전제로 한 사이버 복원력’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자율성을 전제로 한 통제’가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AI 에이전트가 전사적자원관리, 고객관리, 이메일, 파일,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건드리는 환경에서는 단순한 해킹보다 ‘기계 속도로 실행되는 잘못된 결정’이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실제 사례로는 AI 에이전트가 9초 만에 운영 데이터베이스와 백업을 함께 삭제하거나, 클라우드 환경을 자율적으로 재구성하다 13시간 장애와 수백만달러 규모 주문 손실을 낸 경우가 제시됐다.
비암의 해법은 ‘데이터·AI 신뢰 계층’
비암은 현재 AI 스택에 빠져 있는 것이 바로 ‘신뢰 계층’이라고 주장했다. 데이터 플랫폼과 AI 모델 사이에서 데이터, 신원, 접근 권한, 규제 준수, 복원력을 통합 관리하는 별도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비암은 ‘비암 데이터AI 커맨드 플랫폼’을 공개했다. 회사는 이를 ‘에이전트 시대를 위한 업계 최초의 통합 데이터·AI 신뢰 인프라’로 규정했다. 이 플랫폼은 2025년 12월 인수한 데이터·AI 보안 태세 관리 업체 시큐리티 기술과 비암의 기존 데이터 보호 역량을 결합한 결과물이다.
이 플랫폼은 실제 운영 데이터와 백업 데이터를 함께 연결해 AI 에이전트가 무엇에 접근했고, 어떤 작업을 했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이를 어떻게 되돌릴지까지 한 화면에서 파악하도록 설계됐다.
300개 이상 커넥터로 데이터 흐름 한눈에
플랫폼의 기반은 ‘데이터AI 커맨드 그래프’다. 퍼블릭 클라우드, SaaS, 온프레미스 시스템, 백업 환경을 포함해 300개 이상 커넥터를 통해 데이터를 연결한다. 잘릴은 이를 데이터의 ‘소셜 그래프’에 비유하며, 수십억개 파일과 수백만개 테이블, 사용자, 권한, AI 에이전트 활동, 보호 상태를 지속적으로 추적한다고 설명했다.
비암은 이 그래프 위에서 6가지 핵심 기능을 제공한다. 데이터 보안 태세 관리, 데이터 원천 단위의 거버넌스 적용, 100개 이상 규제 프레임워크 대응, 개인정보 처리 자동화, 정밀 복구 기능 등이 그것이다. 유럽연합 AI 법,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 미국 의료정보보호법(HIPAA),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기준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히 복구 영역에서는 시스템 전체를 되돌리는 대신, 문제가 된 특정 데이터 요소나 AI 에이전트의 ‘5초간 행동’만 정밀하게 되돌리는 기능을 강조했다. AI 시대에는 기업 전체를 통째로 롤백하는 전통적 방식이 더는 현실적이지 않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신제품도 대거 공개… 마이크로소프트 365부터 적용
이번 행사에서 비암은 ‘비암 데이터 플랫폼 v13.1’도 예고했다. 70개 이상 기능이 추가되며, 하이퍼바이저 지원 확대, 액티브 디렉터리 포리스트 복구 강화, 양자내성암호 기술 개선, NAS 장기보관 비용 절감 기능 등이 포함된다.
또 데이터AI 커맨드 플랫폼 위에 구축된 첫 복원력 서비스인 ‘비암 인텔리전트 레즈옵스’도 선보였다. 첫 지원 대상은 마이크로소프트($MSFT) 365다. 셰어포인트, 원드라이브, 팀즈, 익스체인지 전반에서 변경된 데이터와 민감 정보 여부를 함께 보여주고, 필요한 항목만 선택적으로 복구할 수 있게 했다.
비암은 아울러 맥킨지와 함께 ‘데이터·AI 신뢰 성숙도 모델’도 내놨다. 300명 이상의 최고정보책임자와 최고정보보안책임자 의견을 반영해 만든 평가 체계로, 기업이 AI 실험 단계에서 감사 가능한 신뢰 체계로 넘어가는 과정을 진단하도록 설계됐다.
백업 시장 넘어 보안·거버넌스 시장과 정면 승부
이번 전환은 비암의 경쟁 구도 자체를 바꾼다. 이제 비암은 전통적 백업 업체뿐 아니라 데이터 보안 태세 관리 업체, 신원 기반 보안 플랫폼, 개인정보 자동화 기업, AI 거버넌스 스타트업과도 경쟁하게 된다.
비암의 차별점은 운영 데이터 영역과 백업 영역을 동시에 깊이 이해하는 드문 사업자라는 점이다. 회사는 기업들이 보안, 거버넌스, 컴플라이언스, 프라이버시, 복구를 서로 다른 도구와 예산, 사용자 환경으로 분리 운영하는 방식이 AI 에이전트 시대에는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보고 있다. 문맥이 끊기는 순간 곧 ‘신뢰의 공백’이 생긴다는 논리다.
에스와란은 비암의 재정의를 단순한 간판 교체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데이터, 접근 통제, 신원, AI를 하나의 연결된 플랫폼에서 다뤄야만 에이전트 중심 환경의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다.
AI 도입 속도보다 ‘신뢰 인프라’가 먼저
이번 발표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업이 AI를 본격 도입하려면 기능 추가보다 먼저 ‘데이터·AI 신뢰’ 아키텍처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AI 에이전트가 핵심 데이터에 접근하는지 파악하고, 운영 환경과 백업 환경의 가시성을 통합하며, 사고를 막는 통제와 사고 후 정밀 복구 체계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AI 도입 경쟁이 빨라질수록 규제와 보안, 복원력은 별도 과제가 아니라 핵심 인프라 요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비암은 이 지점을 선점해 차세대 엔터프라이즈 인프라 시장의 새 범주를 만들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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