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401(k) 퇴직연금 제도를 전면 개편하고, 암호화폐와 사모펀드 등 대체자산에의 접근을 공식 허용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조치는 약 12조 5,000억 달러(약 1경 7,375조 원)에 달하는 거대한 퇴직연금 시장을 디지털자산 시장의 새로운 자금 유입 창구로 열어주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번 행정명령은 고용연금보장법(ERISA) 하에 미국 노동부가 제정해온 기존의 운용 지침을 재검토하고, 증권거래위원회(SEC) 및 재무부와 협력해 다양한 대체자산의 편입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통적으로 401(k) 계획은 상장 주식과 국채 등 공공시장 중심의 자산에 집중돼 왔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지침은 비트코인(BTC)을 비롯한 디지털자산과 부동산, 사모펀드 등 민간시장 자산의 활용을 강하게 지지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이는 2025년 초부터 이어진 일련의 규제 완화 흐름의 일환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지난 5월, 암호화폐의 401(k) 편입을 제한하던 2022년의 지침을 철회하면서, 암호화폐가 기존 자산과 동일한 기준에 따라 취급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이어 3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략 비트코인 준비금 설치를 명령한 데 이어,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인 GENIUS법 통과를 이끌었고, 암호화폐와 AI 정책 책임자로 벤처투자자 데이비드 삭스를 임명하며 디지털 금융혁신을 전방위적으로 추진해왔다.
이번 조치는 1990년대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든 미국 내 상장기업 수를 감안했을 때, 개인 투자자들이 더 넓은 자산군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관점에서 사모시장·암호화폐 시장을 제도권 자산으로 대폭 수용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대형 기관 투자자들은 이미 사모펀드와 디지털자산에 대한 노출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제 401(k)라는 대표적인 퇴직자산 체계에 이 시장이 공식 편입되는 것이다. 자산운용사들 또한 다양성 확대 차원에서 401(k) 시장을 새 투자처로 적극 공략할 수 있게 된다.
이번 행정명령은 트럼프의 1기 행정부에서 시도됐다가 바이든 정부 들어 폐기된 사모펀드 투자 가이드라인을 되살리는 성격도 갖고 있다. 당시에는 복잡성·비유동성 문제로 인해 법적 위험을 우려한 연금 상품 제공자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번에는 정부 차원에서 명확한 준칙을 마련해 운용 부담을 덜어줄 계획이다.
특히 암호화폐와 같은 고수익 고위험 자산이 401(k) 구성 자산군에 포함됨에 따라, 수탁 기준, 공정 가치 평가, 자산 보관 원칙 등 실무 지침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국 노동부는 SEC 및 기타 기관들과 함께 추가 규정 수립에 나설 방침이다. SEC 또한 참여자 선택형 퇴직플랜에서 암호화폐 등의 접근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로 인해 블랙스톤, 아폴로, KKR과 같은 기존 사모펀드 강자들이 인프라 선점 효과를 누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해당 기업들은 다년간 로비와 제도 설계 투자를 지속해온 이해 당사자다.
일각에서는 복잡한 대체자산에 대한 투자 결정이 충분한 정보 없이 이뤄질 경우, 일반 투자자에게 추가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반면 지지자들은 투자 판단은 수탁자가 해야 할 일이며, 자산군 자체를 배제하는 접근은 더 이상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궁극적으로 이번 행정명령은 퇴직연금 시스템을 현실 경제와 연계된 대체자산 중심의 구조로 재편하며, 미국 경제 체계 내에서 암호화폐의 제도적 정착을 가속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