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천연가스 시장의 초점이 당장 공급난 여부보다 겨울 전 저장을 채울 수 있는 가격 수준으로 옮겨가고 있다.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중동 에너지 수출 정상화가 늦어질 경우 2026년 12월 네덜란드 TTF 가스 가격이 메가와트시(MWh)당 100유로를 넘어야 충분한 저장 보충이 가능하다는 조건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골드만삭스는 주말 메모에서 중동 에너지 수출이 2027년까지 완만하게만 정상화되는 경우를 전제로 이같이 전망했다. 이 가격은 골드만삭스의 기준 시나리오인 MWh당 50유로보다 110% 높은 수준이다.
같은 메모는 북서유럽 저장고가 8월 말 51% 수준에 그칠 수 있다고 봤다. 저장률이 낮은 상태에서 겨울 수요기에 들어가면 유럽이 LNG 화물을 끌어오기 위해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는 논리다.
유럽의 저장률은 예년보다 낮다. 가스인프라스트럭처유럽(GIE) 수치를 인용한 S&P글로벌은 EU 가스 저장률이 8월 15일 60.8%였다고 집계했다. 이는 같은 시기 최근 5년 수준을 밑도는 수치다.
로이터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발언을 전하며 8월 20일 EU 저장률이 62%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같은 시점은 74%였다. 60.8%와 62%는 집계일이 달라 생긴 차이로, 모두 전년보다 낮은 저장 속도를 가리킨다.
배경에는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LNG 운송 차질 우려와 아시아 수요가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6년 3분기 가스 시장 보고서에서 2026년 2분기 유럽 TTF와 아시아 플래츠 JKM 가격이 모두 2022년 이후 가장 높은 2분기 평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가격 관계도 바뀌었다. IEA는 3월부터 6월까지 아시아 JKM이 유럽 TTF보다 평균 100만BTU당 2.1달러 높은 프리미엄을 보였고, 이 때문에 유연 LNG 화물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했다고 설명했다.
TTF는 네덜란드 가스 거래 허브 가격으로 유럽 천연가스 벤치마크 역할을 한다. JKM은 아시아 LNG 현물 가격 지표다. 두 가격의 상대 수준은 유럽과 아시아 중 어느 시장이 더 많은 LNG 화물을 끌어오는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유럽은 러시아 파이프라인 가스 의존도를 낮춘 뒤 LNG 비중을 키웠다. 그 결과 아시아 현물 LNG 가격이 유럽보다 높아지면 유럽 저장 보충 속도는 아시아 수요와 더 직접적으로 맞물린다.
시장 가격은 이미 긴장감을 반영했다. S&P글로벌은 8월 14일 플래츠 기준 TTF 월물 가격을 MWh당 60.68유로로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8월 24일 유럽 가스 가격이 4% 올라 MWh당 68.61유로까지 상승했다고 전했다.
다만 현 가격은 골드만삭스가 조건부 시나리오에서 제시한 100유로와는 차이가 있다. 100유로 전망은 중동 에너지 수출 정상화가 2027년까지 늦어진다는 가정에 묶여 있다.
유럽 당국은 즉각적인 공급 우려에는 선을 그었다. 이바 흐르니초바(Eva Hrncirova)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8월 20일 브뤼셀에서 "EU의 천연가스 공급에 즉각적인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공급 위기 단정과 저장 보충 압박을 구분해야 한다는 의미다.
골드만삭스는 5월 공식 분석에서도 호르무즈를 통한 LNG 차질이 길어질수록 유럽 가스 가격이 MWh당 100유로를 넘을 수 있다고 봤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를 통한 LNG가 세계 공급의 약 19%에 해당하고, 카타르발 가스가 2024년 유럽 가스 소비의 약 12%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논의는 유럽 저장률이 낮다는 단일 수치보다 LNG 확보 경쟁의 가격 조건을 보여준다. 독일의 저장 목표 논란과 공급 안정 평가도 유럽 전체의 재고 보충 문제와 맞물려 있다. 골드만삭스의 100유로 시나리오는 중동 수출 정상화 지연을 전제로 한 가정이며, 호르무즈 정상화 속도와 아시아 LNG 가격이 달라질 경우 가격 경로도 달라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