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11일 국제유가 급등으로 물가 불안이 커진 만큼 지금은 기준금리 인하를 논하기 어려운 국면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금융통화위원회 안에서 대표적인 비둘기파, 즉 통화 완화를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인물로 분류됐던 신 위원이 임기 만료를 하루 앞두고 통화정책의 무게중심을 다시 물가 쪽에 둘 필요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신 위원은 이날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중동 정세 불안으로 유가가 예상보다 높게 유지되면 국내 물가에 이른바 2차 충격이 번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2차 충격은 기름값 상승이 운송비와 생산비를 거쳐 전반적인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다시 밀어 올리는 현상을 뜻한다. 그는 당초 연말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안팎으로 안정될 것으로 봤지만, 현재 흐름으로는 90달러 수준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크고 상황에 따라 그 이상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성장 둔화 부담이 있더라도 통화정책은 우선 물가를 잡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 발언은 더 주목된다. 신 위원은 지난해 1월, 4월, 8월, 10월, 1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홀로 금리 인하 소수의견을 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에는 물가 상승 압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봤지만, 지금은 여건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물가상승률이 한국은행 목표치인 2%를 웃돌 가능성이 있다면, 성장과 물가가 충돌하는 상황에서도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가 금리 인하 중단을 넘어 인상 가능성까지 언급한 점까지 감안하면, 한국은행 내부 분위기는 완화보다는 긴축 경계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신 위원은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도 함께 짚었다. 반도체 경기 호조로 전체 성장률은 상향 조정될 여지가 있지만, 그 성과가 경제 전반으로 넓게 퍼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경제에서 약 10% 비중의 특정 분야가 전체 간판 지표를 좌우하는 구조가 심해졌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산업은 자본집약적 성격이 강해 고용 유발 효과가 상대적으로 작고, 수출과 기업 실적 개선이 곧바로 내수와 소비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높은 저축률 탓에 성장률이 나아져도 민간소비 증가세는 기대만큼 강하지 않다고 진단하면서, 국민이 과도하게 저축에 의존하지 않고 생애 전반의 소비와 자산 활용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율과 금융시장 개방에 대한 견해도 내놨다. 신 위원은 현재 원화가 저평가된 가장 큰 이유로 한미 금리 역전을 들면서도, 이를 감안하더라도 원화 가치가 지나치게 낮게 평가돼 있다고 봤다. 그 배경으로는 국내 투자자의 해외 투자 수요가 짧은 기간에 급격히 늘어난 점을 꼽았다. 다만 여러 거시 흐름을 볼 때 원/달러 환율은 앞으로 지금보다 하향 안정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동시에 세계국채지수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국 지수 편입처럼 한국 금융시장이 국제시장과 더 촘촘히 연결될수록 자금 쏠림과 변동성도 커질 수 있다며, 당국이 시장 불안 시 어떤 안정화 수단을 쓸지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한국은행의 금리 판단이 단순한 경기 부양보다 유가, 환율, 대외 충격에 따른 물가 경로를 더 민감하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