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 타결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전쟁 충격으로 치솟은 에너지 가격이 이미 유럽 전반의 물가를 다시 밀어 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15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프랑스 매체 프랑스퀼튀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몇 주 사이 인플레이션의 간접 영향이 거의 모든 부문으로 번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기조 물가를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조 물가는 에너지와 식료품처럼 가격 변동이 큰 항목을 뺀 물가 흐름으로, 중앙은행이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물가 상승세가 구조적으로 굳어지는지를 판단할 때 중요하게 보는 지표다.
라가르드 총재는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 타결에 대해 앞으로 며칠 동안 협상 경과가 이어지고 양해각서가 서명된다면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란의 농축 우라늄 처리 문제처럼 실제 합의에 이르기까지 남은 쟁점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겉으로는 휴전 또는 종전 분위기가 형성돼도, 시장이 안심할 만큼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읽힌다.
유럽중앙은행은 이란전쟁 발발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가장 먼저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금리 인상이 유럽의 경기 둔화를 더 키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라가르드 총재는 이런 지적을 이해한다면서도, 인플레이션이 다시 살아나면 이를 억제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책무라고 반박했다. 높은 물가가 장기화하면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고 기업의 비용 부담도 커져 경제 전반의 체력이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물가 불안의 출발점으로 꼽힌 국제유가는 이날 종전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장보다 5% 넘게 하락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중동의 핵심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석유·가스 공급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요아힘 나겔 분데스방크 총재도 지난 13일 공급망이 이미 바뀌었고 위험 프리미엄도 높아질 수 있다며, 전쟁이 끝나더라도 당분간 높은 물가 수준에 적응해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유럽중앙은행이 경기 둔화 우려와 물가 재상승 압력 사이에서 쉽지 않은 통화정책 판단을 이어가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