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셋증권이 1조원이 넘는 자금 조달에 나서면서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대형 기업 자금과 증권사 조달 전략이 맞물리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6월 29일 금융감독원에 1조2천600억원 규모의 기업어음(CP·단기 자금 조달을 위한 약속어음) 발행을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이번에 발행되는 기업어음의 만기는 2년 이상으로 알려졌고, 일부 물량은 2029년 하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구조로 전해졌다. 통상 기업어음은 단기 자금 조달 수단으로 인식되지만, 만기가 길어질수록 사실상 중기성 자금 성격도 함께 띠게 된다.
시장 관심은 이 물량의 인수 주체에 쏠리고 있다. 관련 사정에 밝은 인사는 SK하이닉스가 해당 기업어음 전량을 인수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만약 이런 구조가 실제로 성사된다면, 미래에셋증권은 불특정 다수 투자자를 상대로 자금을 모으기보다 대형 기관성 자금을 통해 한 번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는 셈이 된다. 발행사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의 확실성을 높일 수 있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운용처를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이와 맞물려 미래에셋증권이 이달 6일 진행할 예정이었던 수천억원 규모의 회사채 수요예측을 연기한 점도 시장의 해석을 낳고 있다. 수요예측은 회사채를 발행하기 전 기관투자자의 매수 의사를 확인해 금리와 물량을 정하는 절차인데, 이미 대규모 자금 확보 통로가 마련됐다면 굳이 같은 시점에 회사채 발행을 강행할 이유는 크지 않다. 결국 SK하이닉스의 투자 참여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래에셋증권이 전체 조달 계획을 다시 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SK하이닉스의 존재감이 최근 채권시장에서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점도 이번 움직임의 배경으로 꼽힌다. 반도체 업황 호조, 이른바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SK하이닉스가 대규모 현금을 쌓으면서, 이 자금을 어디에 운용하느냐가 시장의 관심사가 됐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최근 주요 대형 증권사들이 발행한 2년 만기 공모채에도 투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적 호조로 유동성이 풍부한 제조 대기업이 금융회사 채권과 기업어음의 핵심 투자자로 부상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국내 채권시장에서 대기업의 여유 자금이 단순 예금에 머무르지 않고 우량 금융채와 기업어음으로 더 적극적으로 이동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동시에 증권사들로서는 시장 금리와 투자 수요를 살피면서 회사채, 기업어음, 사모성 조달 수단을 유연하게 섞어 쓰는 전략이 한층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