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8일 30원 가까이 급락해 한 달여 만에 1,500원 아래로 내려갔다.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증시에서 순매수로 돌아섰고,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ADR) 발행을 앞두고 달러 매도 기대가 커지면서 원화 강세가 두드러진 결과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이날 원/달러 환율의 오후 3시 30분 기준가는 전날보다 29.7원 내린 1,498.5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5월 14일 1,491.0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장중 기준으로 환율이 1,500원 밑으로 내려간 것도 5월 29일 이후 처음이다. 환율은 오전 6시 1,516.5원에 출발해 오후 들어 하락 폭을 키웠고, 장중 한때 1,498.1원까지 밀렸다.
이날 환율 하락의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외국인 자금 흐름 변화가 꼽힌다. 전날까지 13거래일 연속 국내 주식을 순매도했던 외국인 투자자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약 3천억원어치를 순매수하면서 달러 수요가 줄었다. 여기에 10일로 예정된 SK하이닉스의 미국주식예탁증서 발행과 관련해 대규모 외화 자금이 원화로 바뀔 수 있다는 기대도 시장에 반영됐다. 미국주식예탁증서는 국내 기업 주식을 미국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증서인데, 발행 과정에서 들어오는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면 환율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런 기대가 실제 환전 시점보다 앞서 선물환 거래에 먼저 반영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선물환은 미래의 특정 시점에 정한 환율로 외화를 사고파는 계약을 뜻한다. 하나은행 서정훈 수석연구위원은 관련 물량이 선물환 형태로 미리 매도됐을 수 있고, 이를 본 다른 수출업체들도 보유 달러를 내놓으면서 환율 하락이 더 커졌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신한은행 백석현 이코노미스트도 SK하이닉스의 나스닥 ADR 상장이 약 280억달러 규모 자금을 원화로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원화에 우호적인 재료라고 분석했다. 다만 환전이 여러 시점에 나뉘어 이뤄지면 시장 영향은 급격하기보다 완만하게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다만 환율이 일방적으로 내려갈 여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상선 공격을 이어가고, 미국이 보복 공습과 대이란 제재 복원으로 맞서면서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이 다시 높아졌다. 이런 상황은 금융시장에서 위험 회피 심리를 자극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달러 강세를 부추길 수 있다. 실제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장중 101.212까지 오른 뒤 101.047 수준에서 움직였다. 엔화도 약세를 이어가 엔/달러 환율은 162.244엔을 나타냈고, 원화가 상대적으로 강해지면서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23.86원으로 전날보다 19.39원 내렸다. 이 같은 흐름은 외국인 자금 유입과 기업 환전 수요가 이어질 경우 원화 강세로 더 이어질 수 있지만, 중동 정세와 글로벌 달러 강세가 다시 불안을 키우면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