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지수펀드 시장이 500조원대로 커지면서, 이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도 단순히 지수를 따라가는 역할을 넘어 기업 감시와 의결권 행사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8일 자본시장연구원 김보영 선임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ETF 순자산은 2023년 6월 100조원을 넘긴 뒤 2025년 5월 말 200조원, 2025년 12월 말 300조원, 2026년 5월 말에는 500조원까지 불어났다. 같은 기간 코스피·코스닥 시장 전체에서 ETF가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도 2020년 말 2.2%에서 2025년 말 7.5%로 높아졌다. 시장이 커진 만큼 ETF를 만드는 자산운용사가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존재감도 함께 커졌다는 뜻이다.
이 변화는 실제 주식 보유 규모에서도 확인된다. 자산운용사가 ETF를 통해 들고 있는 주식 잔액은 2020년 말 100조원 수준에서 2025년 말 207조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국내 ETF 상당수는 코스피200처럼 시가총액이 큰 종목 비중이 높은 지수를 그대로 따라가는 구조여서, 자금이 ETF로 몰릴수록 대형주에 대한 운용사 지분도 자동으로 늘어난다. 김 연구원은 이런 구조를 바탕으로 지난 5월 말 기준 국내 상장 ETF의 삼성전자 편입 금액이 53조원, SK하이닉스 편입 금액이 58조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각각 해당 기업 시가총액의 2.9%, 3.5%에 해당하는 규모다.
문제는 이렇게 보유 지분이 커졌어도 자산운용사의 실제 영향력은 아직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지수 추종 ETF 같은 패시브 펀드(시장 지수를 그대로 따르는 펀드)는 장기 보유가 기본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이라고 해도 주식을 팔아 압박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기업과의 대화, 주주총회 의결권 행사 같은 방식이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핵심 수단이 되는데, 국내에선 이 과정이 얼마나 충실하게 이뤄지는지 점검하고 공개하는 체계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다. 일부 운용사는 의결권 행사 사유를 “주주총회 영향 미미”나 “주주권 침해 없음”처럼 형식적으로 적는 데 그치고, 주주권 행사를 뒷받침할 조직과 인력, 내부 의사결정 체계도 회사마다 차이가 큰 것으로 지적됐다.
해외 대형 운용사들은 이미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블랙록은 2025년 기준 인덱스 추종 펀드를 대상으로 42개국 기업에 2천373차례 관여 활동을 벌였고, 1천811개 기업과 대화를 진행했다. 또 1만6천500회 이상 의결권을 행사하고 15만4천여건의 안건에 투표했다. 김 연구원은 국내 운용사도 ETF를 통해 확보한 대규모 지분에 걸맞은 주주 활동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이 위탁운용사 선정 때 주주권 행사와 수탁자 책임 활동에 대한 질적 평가를 강화하고 있고, 정책 당국도 지난해 말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책임투자 원칙) 내실화 방안에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관여 활동 점검 항목을 새로 넣은 만큼 제도적 환경도 바뀌는 흐름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자산운용사가 이해상충 관리와 내부통제를 강화하면서, 단순 자금 운용을 넘어 책임 있는 주주로서 역할을 넓혀가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