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화 예금과 인공지능(AI) 에이전트가 결합하면 은행 예금 이동 속도가 빨라지고, 은행의 장기 대출 여력이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예금 잔액이 곧바로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은행이 금리 위험을 감수하며 장기 자산을 보유하는 능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은 25일자 보고서 ‘토큰화 예금은 은행 유동성과 만기변환에 영향을 줄 수 있다’에서 토큰화 예금이 은행의 유동성 관리와 만기변환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로지 레비(Rosie Levy)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선임 금융 이코노미스트와 스리니 라마스와미(Srini Ramaswamy)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선임 금융 이코노미스트가 작성했다.
토큰화 예금은 은행 예금을 블록체인이나 디지털 원장 위에 올린 형태다. 스테이블코인처럼 은행 밖에서 움직이는 자산이 아니라 기존 은행 규제 체계 안에 남아 있는 예금이다. 다만 24시간 결제와 프로그래밍 기능이 붙으면 예금자는 더 높은 금리를 주는 은행으로 자금을 빠르게 옮길 수 있다.
보고서는 여기에 에이전트형 AI가 결합될 경우 예금자가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은행 간 자금 이동이 거의 즉시 일어날 수 있다고 봤다. 기존 예금은 관계, 결제 관행, 이동 비용 때문에 일정 부분 ‘끈적한’ 자금으로 작동했다. 이 끈적함이 줄면 은행은 장기 고정금리 대출이나 장기 채권 보유를 더 신중하게 판단하게 된다.
핵심 수치는 대출 잔액이 아니라 금리 위험 여력이다. 보고서는 미국 상업은행 자산·부채 자료를 바탕으로 은행이 보유한 총 자산의 듀레이션 노출을 약 7조 달러(약 9695조원)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약 80%는 예금의 만기 특성이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시나리오상 예금의 가중평균수명(WAL)이 10% 줄면 은행의 만기변환 여력은 10년물 환산 기준 약 5800억 달러(약 803조원) 감소한다. 예금 금리 민감도가 10% 높아지면 은행의 듀레이션 위험 감수 여력은 같은 기준 약 7000억 달러(약 970조원) 줄어든다. 보고서는 이 수치를 개별 대출금리 산식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은행이 기존 대출 구성을 유지하려면 부채 구조를 바꿔야 한다. 보고서는 은행이 기간부채 발행 비중을 높일 수 있지만, 도매 조달에 의존한 대출은 소비자와 기업의 신용비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 차주의 대출금리 상승은 이 구조 변화에서 나오는 해석이지, 보고서가 직접 산출한 결론은 아니다.
만기변환은 은행이 짧은 만기의 예금을 받아 긴 만기의 대출과 채권으로 운용하는 구조를 말한다. 예금이 안정적으로 남아 있을수록 은행은 장기 자산을 더 많이 들고 갈 수 있다. 반대로 예금이 금리에 민감하게 움직이면 은행은 유동성 자산을 더 쌓거나 더 긴 만기의 조달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토큰화 예금 논의는 스테이블코인 확산과도 맞물려 있다. 다만 두 구조의 법적 성격은 다르다. 스테이블코인은 통상 별도 발행사가 준비자산을 바탕으로 발행하는 디지털 자산이고, 토큰화 예금은 은행 부채인 예금을 디지털 원장에 표시하는 방식이다.
업계 움직임도 시작됐다. 웰스파고(Wells Fargo)는 4일 보도자료에서 올가을 기업·상업 고객을 대상으로 토큰화 예금을 제한적으로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초기 적용은 달러-파운드 거래로 제한된다. 웰스파고는 2027년 동안 고객, 국가, 통화 범위를 넓힐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웰스파고가 올가을 기업·상업 고객용 토큰화 예금 결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힌 계획과 이어지는 흐름이다. 당시에도 초기 범위는 미국 달러와 영국 파운드 거래였고, 2027년 이후 지원 통화와 고객 범위를 넓히는 일정이 제시됐다.
더클리어링하우스(The Clearing House)도 6일 공개 글에서 토큰화 예금을 일상적 상업 결제 인프라로 키우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은행권에서는 스위프트 원장을 활용한 토큰화 예금 파일럿처럼 은행 간 결제와 정산 구조를 시험하는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토큰화 예금이 넓어지면 이익을 보는 쪽과 부담을 지는 쪽은 갈릴 수 있다. 기업 고객은 상시 결제와 조건부 지급, 빠른 정산에서 효율을 얻을 수 있다. 은행은 결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만, 예금 이동성이 커질수록 조달 안정성과 금리 위험 관리 부담을 함께 떠안게 된다.
국내 시장에도 연결점은 있다. 토큰증권, 스테이블코인, 은행권 디지털 결제 논의가 모두 결제 수단과 예금성 자금의 경계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보고서의 분석 대상은 미국 상업은행의 자산·부채 구조이며, 한국 은행권의 수치나 대출금리 영향을 직접 계산한 자료는 아니다.
보고서는 토큰화 예금이 아직 초기 단계라고 선을 그었다. 실제 영향은 예금자의 이동성, 은행의 가격 정책, 네트워크 설계, 규제 적용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 확인된 쟁점은 대출금리 인상 확정이 아니라 은행 자금조달과 만기변환 구조의 변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