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이 뛰었지만 영국의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는 아직 크게 흔들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영란은행 내부에서는 에너지 충격이 임금과 가격 결정에 뒤늦게 스며드는 2차 효과를 두고 경계론이 이어지고 있다.
휴 필(Huw Pill) 영란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7월 31일 발언에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영란은행의 2% 물가 목표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상당히 이탈”시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과 노동자가 물가 상승으로 본 손실을 만회하려는 과정에서 “더 느리지만 더 교묘한 2차 효과”가 생기는지는 올해 후반이 돼야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란은행은 7월 30일 통화정책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3.75%로 동결했다. 표결은 6대 3이었고 필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메건 그린(Megan Greene) 위원, 캐서린 L. 맨(Catherine L. Mann) 위원은 0.25%포인트 인상을 주장했다.
영란은행은 7월 의사록에서 중동 분쟁 이후 원유와 가스 가격이 분쟁 전보다 높고 변동성도 크다고 밝혔다. 7월 28일 장 마감 기준 브렌트유 1개월물은 배럴당 84달러, 영국 천연가스 1개월물은 열당 136펜스였다.
6월 영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2.6%였다. 자동차 연료는 CPI를 0.6%포인트 끌어올렸다. 에너지 가격이 소비자물가로 전가되는 경로가 여전히 통화정책 판단에 남아 있다는 뜻이다.
쟁점은 단기 유가가 아니라 기대 인플레이션이 중앙은행 목표에 묶여 있는지 여부다. 중앙은행이 말하는 2차 효과는 에너지 비용 상승이 임금 요구와 기업 가격 책정으로 번져 물가 상승을 더 오래 붙잡는 현상이다.
영란은행 7월 통화정책보고서는 인플레이션 기대가 특히 단기 구간에서 높게 유지되고 있다고 밝혔다. 가계의 5~10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3.7%로 과거 평균보다 50bp 높았고, 분쟁 이전과 비교해서도 약 10bp 높았다.
기업 쪽 압력도 남아 있다. 같은 보고서에서 시장참가자조사 응답자의 1년 뒤 CPI 기대 중앙값은 2.5%였다. 기업의 1년 뒤 자사 가격 기대는 3.9%였고, 분쟁 이후 높아진 에너지 비용에 맞춰 가격을 올리겠다는 기업 비중은 55%였다.
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7월 의사록에서 장기 기대의 이탈과 관련된 2차 효과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점은 안도할 만하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임금과 가격 설정의 ‘따라잡기’ 움직임이 더 오래가고 물가 지속성을 키울 수 있다고 적었다.
그가 금리 인상을 주장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기준금리를 4.0%로 올려 물가 상방 위험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앤드루 베일리(Andrew Bailey) 영란은행 총재는 8월 28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현재까지 2차 효과가 “상당히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시장이 약해 임금 협상력이 제한된 점을 물가 압력 억제 요인으로 들었다.
같은 중앙은행 안에서도 해석은 갈렸다. 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선제 대응 필요성에 무게를 뒀고, 베일리 총재는 현재까지 확인된 2차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쪽에 섰다.
금리 시장은 동결 이후에도 연내 0.25%포인트 인상 가능성을 일부 반영했다. 로이터는 7월 31일 파운드가 달러 대비 1.344달러 수준에서 움직였고 월간 기준으로는 달러와 유로 대비 강세를 보였다고 전했다.
본지는 앞서 영란은행의 7월 동결과 표결 구도를 전하며 영국 단기금리 시장에서 연내 25bp 인상 기대가 후퇴한 흐름을 보도했다. 영국 금리 전망은 파운드화와 국채금리 흐름을 통해 글로벌 위험자산 심리와 함께 해석될 수 있다. 다만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 등 개별 자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영란은행의 다음 통화정책 결정은 9월 17일로 예정돼 있다. 통화정책위원회는 그때까지 에너지 가격 충격이 임금과 기업 가격 결정에 얼마나 남는지를 추가로 확인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