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드 투자 시장의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창업가와 투자자들이 그 시점에 어떤 미래를 꿈꿨는지를 파악하는 과정과 같다. 10년 전, 오바마 대통령 임기 말기였던 2015년을 기준으로 보면, 당시 스타트업 업계는 우버(Uber)의 400억 달러(약 57조 6,000억 원) 밸류에이션과 알리바바(Alibaba)의 성공적인 기업공개 사례 등에 크게 영향받고 있었다. 이처럼 특정 성공 사례가 투자 유행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흐름은 과거와 현재 모두에서 반복되고 있다.
2015년에는 마켓플레이스 스타트업이 씨드 자금 유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마켓플레이스’라는 키워드를 가진 400개 이상의 기업이 크런치베이스에 씨드 펀딩 성공 사례로 등재됐는데, 이들은 대부분 확장성이 뛰어난 소비자 대상 플랫폼 기반으로 주목받았다. 또 보험, 통학, 대마초 배송, 식사 준비 등 일상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포부를 지닌 스타트업들이 대거 탄생했다. 자율주행 산업 역시 큰 흐름 중 하나로 부상했으며, 이 시기의 창업 기업 중 상당수는 고전했지만 이 분야에 대한 대중과 산업계의 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당시 탄생한 스타트업 가운데 가장 눈부시게 성장한 회사는 오픈AI(OpenAI)다. 2015년 말 공익법인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샘 알트먼(Sam Altman)과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공동회장을 맡고 있었으며, 초기부터 인공지능 업계의 거물들이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기업 성장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인류 전체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디지털 지능을 발전시키겠다’는 화두로 수익성보다는 공공성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오픈AI는 챗GPT의 글로벌 인기와 함께 약 3000억 달러(약 432조 원) 기업가치를 평가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벤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도 유치했다.
오늘의 씨드 투자 트렌드를 살펴보면, AI 분야가 단연 주도권을 쥐고 있다. 생성형 AI 스타트업들이 이미 후기 단계로 진입하면서, 이제는 바이오테크, 로보틱스,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등 전문 분야에 AI를 적용하는 초기기업들이 자금 유치의 중심에 있다. 크런치베이스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시장의 씨드 투자 중 약 40%가 AI 관련 분야에 집중됐고, 이는 13,000건 이상의 투자 건수로 집계되며 금액은 약 50억 달러(약 7조 2,000억 원)에 달했다.
흥미로운 점은 씨드 투자 규모 자체가 과거보다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2015년에는 2,500만 달러 이상의 씨드 라운드가 단 4건에 불과했지만, 최근 1년간은 이보다 10배 이상 많은 대형 라운드가 성사됐다. 일례로 AI 기반 혁신기업인 라일라 사이언스(Lila Sciences)와 더 봇 컴퍼니(The Bot Co.)는 1000억 원이 넘는 투자금을 끌어모았으며, 이는 씨드 시장의 스케일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확대됐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10년 후 다시 이 시기를 되돌아본다면, 오늘의 투자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추세를 보면, 그 분석은 인간이 아닌 AI가 작성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