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웹3 창업자마다 약속이나 한 듯 '혁신'을 부르짖는다. 하나같이 비장한 표정이지만, 정작 그들의 사업계획서를 들춰보면 지독한 기시감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필자가 자문했던 수십여 개 스타트업이 마치 짠 듯이 판박이다. 그들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5가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덤벼든다.
투자 유치 현장은 고장 난 녹음기 전시장이나 다름없다. "디파이와 게임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현존하는 어떤 블록체인보다 빠르고 안전하다", "실리콘밸리 유명 투자사가 기술력을 검증했다"는 레퍼토리를 앵무새처럼 읊어댄다. 틀린 말은 아닐지 모른다. 진짜 문제는 시장에 나온 다른 수백개 프로젝트도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에 우후죽순 쏟아졌던 스테이블코인 사태를 복기해 보라. 저마다 '혁신적 알고리즘'과 '새로운 담보 모델'을 앞세워 제2의 테더가 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기존 강자들보다 투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과는 어떠했나. 시장의 신뢰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대다수는 그저 그런 '잡코인'으로 전락해 사라졌다. 지금 시장에 유의미한 자기 영토를 구축한 곳이 단 한 곳이라도 있는가.
많은 웹3 대표들이 범하는 치명적 착각은 '제품 차별화'와 '시장 포지셔닝'의 혼동이다. 차별화가 '무엇을 만드느냐'의 기술적 문제라면, 포지셔닝은 '고객의 머릿속에 어떤 깃발을 꽂느냐'의 인식 문제다. 당신의 기술이 경쟁사보다 10% 앞선들 무엇하나. 경쟁사의 메시지가 10배 더 선명하다면, 시장은 주저 없이 기술이 반쪽짜리인 그들의 손을 들어준다. 이것이 냉혹한 시장의 섭리다.
성공한 프로젝트들을 보라. 그들은 모호한 '더 나음'에 집착하지 않았다. 대신 확실한 '다름'을 각인시켰다. 유동성이 막혀있던 시절 '무허가 거래소'를 선점한 유니스왑, 이더리움 수수료가 살인적일 때 '저렴한 가스비'로 파고든 솔라나를 보라. 이들은 단순한 스펙 나열이 아니라, 대중의 인식 속 빈틈인 '정신적 부동산'에 확실한 말뚝을 박은 것이다.
웹3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뜬구름 잡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구체적인 '자기 언덕' 하나를 골라야 한다. "모두를 위한 서비스"라는 말은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서비스"라는 고백이나 진배없다. "더 빠르고 저렴한 레이어1" 같은 식상한 구호는 이제 쓰레기통에 처박아야 한다. 누구를 위해, 어떤 문제를, 왜 하필 당신만이 해결할 수 있는지 단 한 줄로 증명해 내야 한다.
시장을 압도하는 팀은 자신이 점령할 고지를 선택하고, 그 외의 유혹에는 가차 없이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안다. 만약 지금 당신에게 명확한 '자기 언덕'이 없다면, 오늘도 쏟아붓고 있는 마케팅 예산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 지금 필요한 건 화려한 기술 백서가 아니라, 고객의 뇌리에 꽂힐 선명한 정체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