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베이스, OKX, 제미나이 등 주요 거래소가 USD와 유에스디코인(USDC) 오더북 통합에 나서면서 유동성 효율 개선 기대가 커졌지만, 시장 전체로 보면 스테이블코인 중심 구조는 오히려 더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이코 리서치(Kaiko Research)의 로렌스 프라우센(Laurens Fraussen)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거래소별 통합 이후 유에스디코인 거래량은 대부분 USD 호가창에 흡수됐고 전체 거래 활동도 큰 위축 없이 유지됐지만, 법정화폐 대비 스테이블코인 비중 확대 흐름 자체는 꺾이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거래소별 통합, 거래량 감소보다 구조 재편에 무게
이번 분석은 2022년 코인베이스, 2025년 OKX, 2025년 제미나이의 USD·유에스디코인 오더북 통합 사례를 비교한 것이다. 핵심은 동일한 달러 기준 자산을 따르는 두 시장이 별도 오더북으로 운영되며 생기던 유동성 분산을 줄일 수 있느냐에 있다. 비트코인(BTC)-USD와 비트코인(BTC)-유에스디코인 시장은 경제적으로 유사한 가격 축을 공유하지만, 분리된 호가창 구조에서는 마켓 메이커가 양쪽에 자본을 나눠 넣어야 하고 스프레드도 더 넓어질 수 있다.
코인베이스의 경우 2022년 7월 13일 통합 당시 USD와 유에스디코인 주간 합산 거래량은 약세장 영향으로 200억 달러 수준까지 후퇴한 상태였다. 이 가운데 유에스디코인 비중은 전체의 5~6%에 불과해 통합 자체가 거래소 전체 거래량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었다. 실제로 통합 직후 유에스디코인 거래량은 사실상 0으로 수렴하며 USD 오더북으로 흡수됐고, 합산 거래 활동의 유의미한 감소는 관찰되지 않았다. 다만 유동성 개선 효과는 곧바로 나타나지 않았고, 시장 사이클이 회복된 2024~2025년에 들어서야 오더북 깊이가 본격적으로 두터워졌다.
OKX는 코인베이스와 반대 사례에 가깝다. 카이코 리서치(Kaiko Research)의 로렌스 프라우센에 따르면 OKX는 통합 이전 유에스디코인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구조였고, 합산 주간 거래량은 수개월간 30억 달러 안팎을 유지했다. 이후 2025년 7월 14일 USD와 유에스디코인 오더북을 통합했고, 같은 해 8월 20일에는 유에스디코인 기준 현물 거래쌍을 상장 폐지해 유동성 이전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거래량은 일시적으로 약 10% 감소했지만, 평균적으로는 USD 비중이 60% 수준까지 상승하며 기준 통화 체계가 재편됐다.
오더북 깊이 개선은 ‘점진적’, 시장 사이클 영향이 더 컸다
거래소들이 오더북 통합을 선택한 주된 이유는 스프레드 축소와 유동성 집중이다. 그러나 통합이 곧바로 시장 품질 개선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카이코 리서치는 비트코인(BTC)-USD 1% 기준 평균 오더북 깊이를 비교한 결과, 코인베이스·OKX·제미나이 모두에서 통합 직후 즉각적인 깊이 확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짚었다.
코인베이스는 2022년 7월 통합 이후에도 2023년과 2024년 내내 1,500만~2,000만 달러 수준의 오더북 깊이를 유지했다. 유에스디코인 비중 자체가 작았던 만큼 통합 효과도 제한적이었던 셈이다. 이후 강세장이 전개된 2024~2025년 들어서야 깊이가 4,000만 달러를 웃도는 수준까지 확대됐다. OKX 역시 통합 전후로 의미 있는 급변은 없었고, 전반적인 시장 여건이 개선되면서 완만한 회복세를 보였다. 제미나이는 통합 시점이 비교적 최근이어서, 통합 효과와 하락장 영향을 분리해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이는 오더북 통합이 ‘만능 해법’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구조적으로는 분산된 유동성을 한데 모을 수 있지만, 실제 깊이와 체결 환경은 결국 거래소의 전체 참여자 규모, 마켓 메이커 활동성, 시장 국면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오더북 통합은 거래 인프라 개선 조치이지만, 유동성의 방향성을 바꾸는 동력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시장 전체는 법정화폐보다 스테이블코인으로 더 기울었다
개별 거래소의 통합 흐름과 달리, 글로벌 시장 차원에서는 스테이블코인 우위가 더욱 뚜렷해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USD 담보 스테이블코인이 전체 법정화폐-암호화폐 거래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1월 79.04%에서 2026년 3월 86.51%로 상승했다. 반면 USD 법정화폐 비중은 20.96%에서 13.49%로 하락했다. 거래소들이 유에스디코인을 USD 오더북으로 통합하며 법정화폐 중심 체계를 강화하려 했음에도, 시장 전체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스테이블코인 점유율 확장이 유에스디코인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카이코 리서치는 테더(USDT)와 페이팔USD(PYUSD)가 글로벌 시장에서 기준 자산 역할을 넓히며 전체 스테이블코인 비중 상승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즉 코인베이스, OKX, 제미나이의 유에스디코인 통합은 규제 거래소 내부의 운영 효율화와 분류 체계 재정비에 가깝고, 광범위한 암호화폐 시장의 기준 통화 경쟁에서는 여전히 스테이블코인이 우세를 넓히고 있다는 뜻이다.
법정화폐 거래량이 줄어들어서 스테이블코인이 부상한 것도 아니다. 2024년 대비 2025년 기준 유로화 거래량은 31.43%, USD는 18.64%, 기타 통화는 4.67%, 엔화는 2.90% 각각 증가했다. 원화(KRW)만 11.54% 감소했다. 이 수치는 법정화폐 거래 자체도 성장했지만, 스테이블코인 거래가 그보다 더 빠르게 늘어 시장 점유율 차이를 벌렸음을 보여준다.
효율성의 대가, ‘USD’의 정의가 흔들린다
시장 참여자 입장에서 USD와 유에스디코인 오더북 통합은 분명한 장점이 있다. ‘스프레드’ 축소, 단일 오더북 기반 유동성 심화, 마켓 메이커의 담보 분산 부담 완화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효율성 증대는 다른 인프라 층위에서 새로운 문제를 만든다. 벤치마크 사업자나 기관 브로커, 커스터디 업체 입장에서는 통합된 BTC-USD 가격이 과연 ‘실제 법정화폐 달러’ 기반 가격인지, 아니면 스테이블코인 주문 흐름이 섞인 합성 지표인지가 중요해진다.
특히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규제 벤치마크처럼 기초 상품의 법정화폐 결제 여부가 핵심인 경우, 유에스디코인 주문 흐름이 포함된 호가창에서 계산된 BTC-USD 금리를 순수한 법정화폐 기준 금리로 보기 어렵다. 엄격한 법정화폐 결제 프레임워크를 쓰는 기관 시스템도 같은 난제를 안게 된다. 겉으로는 USD 마켓이지만 실제로는 스테이블코인 유동성이 섞여 있는 만큼, 기존 결제·보고 체계에서는 분류 모호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흐름은 거래소의 효율성과 시장 인프라의 엄격한 정의 체계가 충돌하는 지점을 보여준다. 카이코 리서치(Kaiko Research)는 거래소들이 유동성 분산 문제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USD가 곧 법정화폐를 의미한다는 전통적 전제를 조용히 흔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유에스디코인 통합은 단순한 운영 개선을 넘어, 암호화폐 시장에서 ‘달러’의 의미가 어디까지 확장됐는지를 묻는 신호로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