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결제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카드 한 장으로 지하철부터 골목 상점까지 막힘이 없고, 스마트폰 결제 보급률은 주요국 중 손꼽힌다. 그러나 이 편리함이 역설적으로 한국 금융을 고립시키고 있다.
겉모습과 속살의 괴리
화려한 외양 아래 구조는 낡았다. 국내 결제망의 핵심은 여전히 1990년대 VAN 사업자 중심의 수직 계열화 구조다. 스마트폰 페이는 그 위에 얹힌 껍데기에 불과하다. 가장 단적인 증거가 정산 주기다. 전 세계가 스테이블코인과 계좌 간 직접 결제(Pay by Bank)를 통한 실시간 정산으로 이동하는 동안, 국내 가맹점은 여전히 매출 대금을 받기까지 사흘(T+3)을 기다린다. 기술은 21세기인데, 돈이 움직이는 방식은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
준비는 끝났다, 문제는 의지다
기술적 준비는 이미 갖춰져 있다. BC카드·NHN KCP·농협은행 등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실물 테스트를 마쳤다.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규제 공백과 "지금도 충분히 편한데"라는 현실 안주가 전환을 막고 있다.
노키아의 교훈은 여기서 유효하다. 피처폰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노키아는 스마트폰 전환기를 외면하다 5년 만에 시장에서 퇴장했다. 현재의 최강자가 미래의 패자가 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국내용 최적화' 시스템은 국경 없는 거래와 플랫폼 경제가 일상이 된 시대에 결국 고립된 섬이 된다.
결제를 넘어, 프로그래머블 머니로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결제 수단이 아니다. 조건부 지급, 자동 배분, 실시간 국경 간 정산을 코드로 실현하는 금융 인프라 자체다. 현재의 카드·VAN 구조가 공급자의 수익 구조에 최적화되어 있다면, 스테이블코인은 그 구조를 근본부터 재설계할 수 있는 도구다.
통신 인프라를 2G에서 LTE·5G로 교체하며 IT 강국의 지위를 다졌듯, 금융망도 세대교체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금융당국은 스테이블코인을 규제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실험할 수 있는 샌드박스를 확대해야 한다. 카드사와 VAN사는 기존 수수료 구조 방어에 집중하는 대신, 새로운 정산 레이어 위에서의 사업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의 편리함을 지키는 것과 미래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늦으면 선택지 자체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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