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테더(Tether)가 이란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지갑 두 곳에서 총 3억 4,400만 달러(약 4,800억원) 규모의 USDT를 동결했다. 미국 재무부가 이를 공식 확인하면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미국의 대외 금융제재 수단으로 본격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테더 공시 이틀 뒤, 재무부가 직접 확인
테더는 지난주 수요일 "불법 행위와 연루된 두 지갑에서 USDT를 동결했다"고 공시했다. 자금 출처나 지갑 소유자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미국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과의 협력 하에 이루어진 조치라는 점만 밝혔다.
이틀 뒤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재무장관이 직접 나섰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 정부가 "이란과 연결된 복수의 암호화폐 지갑"을 제재했으며, 동결된 암호자산 규모가 총 3억 4,400만 달러라고 밝혔다. 테더의 공시 금액과 정확히 일치한다.
베센트 장관은 명시적으로 USDT를 거론하지 않았지만, 금액과 시점이 완전히 겹치면서 테더의 동결 조치가 미국 정부의 대이란 제재 집행의 일환임이 사실상 확인됐다.
Under Economic Fury, @USTreasury will continue to systematically degrade Tehran’s ability to generate, move, and repatriate funds.
— Treasury Secretary Scott Bessent (@SecScottBessent) April 24, 2026
Treasury’s 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 is sanctioning multiple wallets tied to Iran — resulting in the freeze of $344 million in…
'경제적 분노' 작전: 이란 자금줄 차단
베센트 장관은 이번 조치가 미국 정부의 '에픽 퓨리(Epic Fury)' 대이란 군사·외교 작전을 보완하는 '이코노믹 퓨리(Economic Fury)' 작전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이름 그대로 이란 정권에 "금융 교살"을 가하는 것이 목표다.
재무장관은 "이코노믹 퓨리는 테헤란의 자금 조성·이동·본국 송환 능력을 체계적으로 약화시키는 핵심 수단"이라며, 이란의 중동 내 군사 행동과 핵 야망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규정했다. 미국 정부는 이란의 국제 자금 흐름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이란 정부와 연결된 모든 금융 생명선을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크립토 커뮤니티의 엇갈린 시선
이번 사태는 크립토 업계 내에서 첨예한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한쪽에서는 테더의 OFAC 협력을 성숙한 규제 순응의 증거로 본다. 제도권 진입을 원하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당연히 가야 할 길이며, 장기적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행보라는 평가다.
반대편에서는 이번 사건이 USDT의 구조적 취약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본다. 발행사가 특정 지갑을 언제든 동결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은, USDT가 결국 전통 은행 시스템과 동일한 감시·통제 구조 아래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탈중앙화된 달러"라는 스테이블코인의 가치 명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지점이다.
일부 비판론자들은 이번 사태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정치적 무기화 우려와 연결짓기도 한다. 국가 권력이 디지털 화폐의 접근권을 통제할 수 있다는 공포가, 민간 스테이블코인 영역에서 이미 현실로 나타났다는 논리다.
달러 스테이블코인, 미국 제재의 새 팔이 되다
이번 사건의 의미는 이란이나 테더의 차원을 넘는다. 미국 정부가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금융제재의 실행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공식화됐다.
SWIFT 기반 달러 결제망이 이미 미국의 핵심 제재 인프라로 작동하듯, 테더-OFAC 협력 체계는 그 연장선상에서 온체인 달러까지 미국의 통제 반경 안에 포함시켰다. 탈달러화를 모색하던 국가들이 스테이블코인을 우회로로 삼으려 했다면, 그 경로도 이미 봉쇄되어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한국의 맥락에서도 이 사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논의 중인 원화 스테이블코인(KRW stablecoin) 정책, 그리고 역외 원화 NDF 시장을 겨냥한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 모델 모두, 발행 주체의 국적과 준거법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제재 리스크와 정치적 노출도가 완전히 달라진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쓰는 순간, 그것은 미국의 금융 질서 안에서 움직이는 도구가 된다.
스테이블코인은 탈중앙화된 돈이 아니다. 적어도 USDT는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