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트 결제가 암호화폐 결제 인프라의 새로운 실험장이 되고 있다. 알레아 리서치(Alea Research)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이 에이전트 결제의 핵심 정산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실제 수익과 경쟁력은 정산 자체보다 승인, 검증, 전달 증빙, 대사 같은 상위 계층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에이전트 결제의 초기 성장은 소매나 기업 조달보다 API 호출, 데이터 접근, 브라우저 세션 같은 ‘기계 웹’ 영역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에이전트 결제는 단순히 자금을 A에서 B로 옮기는 기존 디지털 결제와 다르다. 핵심은 ‘위임된 경제적 행위’다. 사용자가 목표와 규칙만 설정하면 AI 에이전트가 이를 바탕으로 판매자를 찾고, 가격을 비교하고, 자원을 선택한 뒤 결제까지 수행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누가 결제를 승인했는지, 어떤 범위까지 구매 권한이 부여됐는지, 실제로 대가가 전달됐는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에이전트 결제는 송금보다 훨씬 복합적인 통제 체계를 필요로 한다.
이 같은 구조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특히 USDC(USDC), 테더(USDT) 같은 자산은 소액의 일회성 소프트웨어 구매에서 강점을 보인다. 판매자가 소프트웨어이고, 상품이 접근 권한이며, 구매 대상이 API 호출이나 데이터 조회라면 계정 개설이나 카드 등록 절차는 과도한 마찰이 된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런 구간에서 프로그래밍 가능한 결제 연료로 작동한다. 다만 알레아 리서치(Alea Research)는 스테이블코인이 ‘정산’을 해결할 뿐, 결제 전체를 해결하지는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지갑 서명만으로는 에이전트의 권한, 공급업체 승인 여부, 전달 실패 시 책임 소재까지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에이전트 결제에 필요한 기록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권한을 부여하는 위임장, 거래 조건을 담은 견적, 실제 자금 이동을 표현하는 결제 지시, 그리고 무엇이 전달됐는지를 입증하는 전달 기록이다. 이 연결고리 중 하나라도 끊기면 구매자는 한 가지를 승인하고 다른 것에 돈을 지불한 뒤 전혀 다른 결과물을 받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결국 에이전트 결제에서 진짜 ‘프리미엄 계층’은 정산이 아니라 ‘증빙’이다. 누가 승인했는지, 거래가 정책 범위 안에서 이뤄졌는지, 판매자가 실제로 무엇을 제공했는지, 실패 시 손실이 어디로 귀속되는지가 시장 가치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와 플랫폼 기업들의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구글의 AP2, 마스터카드의 ‘검증 가능한 의도’, 비자의 신뢰 에이전트 프로토콜, 스트라이프의 공유 결제 토큰은 모두 의도와 승인, 인증 정보 통제를 결제 흐름에 연결하려는 시도다. 이는 단순히 결제 속도를 높이는 경쟁이 아니라, AI 에이전트가 사람의 의사와 일치하는 범위 안에서 거래했는지를 증명하는 표준 경쟁에 가깝다. 보고서는 보안 실패가 곧 재무 실패로 연결된다고 짚었다. 프롬프트 인젝션이나 목표 탈취, 도구 오용이 발생하면 무단 지출, 훼손된 영수증, 컴플라이언스 공백, 잘못된 전달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시장 구조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소매 상거래, 둘째는 기업 조달, 셋째는 기계 웹 접근이다. 소매 영역에서는 비자, 마스터카드, 스트라이프, 지갑 사업자, 가맹점 플랫폼이 이미 사기 방지와 환불, 분쟁 처리, 고객 지원을 장악하고 있어 스테이블코인이 전면에 나설 여지가 제한적이다. 사용자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자금을 대고 가맹점은 법정화폐를 수취하는 형태는 가능하지만, 결제창 자체가 스테이블코인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은 아직 낮다는 평가다.
기업 조달도 사정은 비슷하다. 스테이블코인이 송금과 정산을 단순화할 수는 있지만, 기업은 여전히 공급업체 승인, KYB, 제재 확인, 예산 통제, 세금 처리, 영수증 관리, ERP 대사 같은 절차를 필요로 한다. 즉 USDC(USDC)나 테더(USDT)가 기업 환경에서 바로 결제 인프라의 주역이 되기는 어렵고, 기업용 재무 소프트웨어와 통제형 정산 네트워크가 그 위를 감싸는 구조가 유력하다는 해석이다.
반면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구간은 기계 웹이다. API 호출, 데이터 조회, 추론 작업, 브라우저 세션, 저장, 검색, 유료 페이지 접근 같은 저가 소프트웨어 자원은 즉시 전달이 가능하고 분쟁 여지도 상대적으로 작다. 이 경우 에이전트 결제는 사람이 직접 결제창을 열어 카드 정보를 넣는 전통적 흐름보다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보고서는 이런 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이 가장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고 평가했다.
실제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한다. 알레아 리서치(Alea Research)에 따르면 2026년 5월 말까지 추적된 에이전트 결제는 1억8387만건, 지출액은 4897만달러로 집계됐다. 건당 평균 결제액은 약 0.27달러에 그쳤다. 최근 30일 기준으로도 7541만건, 2424만달러, 건당 0.32달러 수준이다. 이는 에이전트 결제가 소비자 고액 결제나 대기업 청구서가 아니라 초소액 기계 웹 거래에 집중돼 있음을 보여준다. 달러 거래량만 보면 아직 미미하지만, 거래 건수와 반복 사용, 판매자 증가 추세는 초기 시장 존재감을 드러내는 지표로 읽힌다.
다만 이 시장은 아직 실험 단계의 잡음도 크다. 2025년 4분기에는 x402 기반 거래가 급증하며 약 1억4400만건의 추적 거래가 발생했지만, 이 가운데 약 5400만건은 자기거래 또는 워시 활동과 유사한 패턴으로 분류됐다. 비조작 활동은 약 9000만건 수준이었다. 급증 이후 실제 거래는 빠르게 줄었고, 5월 말 기준 실제 거래는 10만7000건, 조작 비중은 22%로 집계됐다. 숫자가 빠르게 커졌다고 해도 곧바로 안정적 수요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현재 프로토콜 경쟁의 중심에는 x402와 MPP가 있다. x402는 ‘HTTP 네이티브 결제’ 모델이다. 서버가 ‘402 Payment Required’와 함께 결제 조건을 제시하면, 에이전트가 결제 페이로드에 서명해 다시 요청을 보내고, 서버 또는 중개자가 이를 검증한 뒤 자원을 제공하는 구조다. 개방형 웹에서 유료 소프트웨어 엔드포인트를 만들기 쉬운 방식이라는 장점이 있다. MPP는 이 402 흐름을 기계 간 결제에 확장한 개방형 프로토콜로, 스트라이프와 템포가 공동 개발했다. 차이는 결제 수단의 폭이다. x402는 암호화폐 네이티브 흐름에 가깝고, MPP는 스테이블코인뿐 아니라 카드, 지갑, BNPL까지 포괄할 수 있다.
가시성 측면에서는 x402가 앞선다. 온체인 흔적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2026년 5월 기준 Base는 추적된 x402 거래의 약 82%를 차지했고, 솔라나(SOL)는 약 17%, 리플(XRP)은 약 2% 수준으로 집계됐다. 6월 들어서는 Base 비중이 약 95%까지 올라갔다. 연초 이후 누적으로도 Base 우위는 뚜렷했다. 보고서는 코인베이스가 주요 중개 경로를 확보하고 있고, Base의 낮은 수수료 구조가 1달러 미만의 소프트웨어 호출 결제에 적합하다는 점을 배경으로 제시했다.
MPP의 경우 공개 데이터만으로는 실제 규모를 과소평가할 수 있다. 스트라이프 내부에서는 법정화폐, 카드, 지갑, BNPL 흐름까지 함께 처리할 수 있어 모든 활동이 온체인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온체인에서 확인되는 MPP 초기 흔적은 템포를 중심으로 약 113만건 수준이며, 이 중 46%가 최근 30일에 발생했다. 일일 활성 수취인은 수백명 초반대로 아직 시장이 매우 초기 단계임을 보여준다.
에이전트 결제의 수익 구조도 흥미롭다. 소매에서는 스트라이프, 페이팔, 비자, 마스터카드, 애플페이 같은 기존 결제 사업자가 여전히 대부분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갈 가능성이 높다. 기업에서는 기업용 재무 소프트웨어와 은행 레일, 기업 카드, PSP가 승인과 회계 통제를 쥐고 있기 때문에 우위를 점한다. 반면 기계 웹에서는 중개자, 지갑 인프라,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검증 및 라우팅 사업자가 유리하다. 특히 코인베이스는 x402 생태계에서 강한 유통력과 선점 효과를 보이고 있고, 스트라이프는 MPP를 통해 기존 가맹점 인프라와의 연속성을 무기로 삼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가운데서는 USDC(USDC)가 가장 뚜렷한 수혜 후보로 꼽힌다. 현재 관측 가능한 기계 결제 시장이 사실상 USDC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피드와 엔드포인트 가격이 USDC 기준으로 책정돼 있고, Circle은 초소액 결제를 겨냥한 나노페이먼트 구조를 통해 0.000001달러 단위 결제 가능성까지 내세우고 있다. 반면 테더(USDT)의 확장형 모델인 USDT0는 여전히 중개자와 지갑, 판매자 측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평가다.
결국 에이전트 결제 시장의 본질은 스테이블코인이 모든 것을 대체하느냐가 아니다.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주된 제품’이 아니라 ‘핵심 정산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즉 정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승인 정책, 지갑 권한 관리, 판매자 및 자원 검증, 전달 증빙, 환불과 예외 처리, 대사 시스템까지 함께 장악해야 더 큰 경제적 몫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에이전트 결제는 분명 성장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소비자 결제창을 바꾸는 혁명보다 기계 웹에서 초소액 소프트웨어 자원을 거래하는 실용적 인프라로 먼저 자리 잡고 있다. 스테이블코인과 에이전트 결제의 결합이 어디까지 확장될지는 결국 누가 정산 너머의 ‘통제 계층’을 선점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 이번 알레아 리서치(Alea Research)의 결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