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가 플라스틱 오염 문제 해결을 위한 생산 감축 협약을 추진하는 가운데,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이 같은 움직임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미국 정부는 플라스틱 생산 제한이 실생활에 직결된 제품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이유를 들며, 타국의 동참을 막기 위한 외교적 압박에도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7월 25일 각국에 전달한 공식 메모에서 플라스틱 생산 목표 설정, 첨가물 및 제품 사용 제한 등 포괄적 규제를 “비실용적”으로 규정하며, 이에 동의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이 메모는 현재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 중인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속개 회의(INC-5.2)’를 겨냥한 외교 문서이다. 이번 회의는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기 위한 국제협약 채택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제적인 플라스틱 오염 대응 논의는 2022년 3월 유엔환경총회에서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협약을 2024년까지 마련하기로 합의한 데서 출발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회의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내용에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지난해 부산 회의에 이어 최근 제네바에서 다시 협상이 열리고 있는 상황이다. 논의의 핵심은 플라스틱 생산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생산 감축 의무화’ 여부에 있다.
플라스틱이 대부분 석유에서 추출한 원료(1차 플라스틱 폴리머)로 만들어지는 구조상, 산유국들은 생산 자체에 제한을 두는 방안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제품 재설계, 재활용 및 재사용만으로도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일부 유럽국가와 글로벌 기업들은 생산 감축 없이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현재 약 100여개 국가는 생산 감축 목표를 협약에 포함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미국의 공식 입장은 석유화학 업계의 주장과도 맥을 같이한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한 언론에 “각국이 자국 상황에 맞게 대응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언급하며, 생산 감축 대신 재활용 확대나 수거 체계 개선 같은 선택적 방안을 허용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일부 국가들은 미국의 이 같은 간섭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파나마 협상단의 대표는 “플라스틱 생산 문제를 협약에서 제외하자는 건 협상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이는 오히려 경제적으로도 자멸적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향후 회의에서 미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 국제협약에 포함될지가 최대의 관심사다. 각국이 이해관계로 첨예하게 갈리는 가운데, 협상 진전 여부는 글로벌 환경정책의 향방뿐 아니라 석유화학 산업과 국제 무역 질서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