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권시장의 결제주기를 하루 줄이는 T+1 도입 논의가 본격화했지만, 투자자 편익 확대와 시장 효율성 개선 기대만큼이나 전산 인프라와 외국인 결제 체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신중론도 함께 커지고 있다.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증권시장 결제주기 단축 토론회’에서는 개인투자자, 외국인 투자자, 증권업계, 정책당국이 한자리에 모여 제도 전환의 필요성과 한계를 두루 짚었다. T+1은 주식을 사고판 뒤 이틀 후 결제가 끝나는 현행 T+2 체계를 하루 앞당기는 방식이다. 미국과 캐나다는 2024년부터 이미 시행 중이고, 유럽연합과 영국, 스위스도 2027년 10월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홍콩 역시 2027년 4분기 시행 계획을 밝힌 상태다. 한국거래소는 이런 국제 흐름에 맞춰 2026년 하반기 중 결제주기 단축을 위한 실무 업무표준안 마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제도 도입의 가장 큰 기대 효과는 자금이 묶이는 시간을 줄여 시장 효율을 높인다는 점이다. 자본시장연구원 노성호 연구위원은 결제 기간이 짧아지면 가격 변동 위험과 거래 상대방의 부도 위험이 함께 낮아지고, 증거금 부담도 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준 일평균 결제대금 약 1조600억원과 기준금리 2.55%를 적용하면 하루 7천400만원가량의 유동성 개선 효과가 가능하다는 계산도 내놨다. 특히 개인투자자들은 매도 후 실제 대금을 받기까지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만큼 제도 변경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이정윤 세무사는 국내 증시 거래대금의 약 64%를 개인이 차지하는 만큼 결제시간 단축의 직접적인 수혜자도 개인투자자라고 강조했고, 박용진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도 매도 대금 수령이 길게는 4~5일 걸리는 현실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증권업계와 외국인 투자자 측은 속도보다 준비가 먼저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노승진 미래에셋증권 본부장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직도 수작업에 의존한 결제 확인 절차를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어, 자동화 체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으면 오히려 결제 불이행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은아 SK증권 IT인프라본부 본부장도 T+1은 단순한 일정 조정이 아니라 시스템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상장지수펀드의 유동성공급자 업무, 증거금 처리 방식, 예수금 산출 체계까지 손봐야 해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SC은행의 김미강 이사는 비거주 외국인 투자자의 경우 매매일부터 결제일까지 3일에 걸쳐 별도 실무 절차가 필요한데, 이런 구조를 손보지 않은 채 결제주기만 줄이면 한국 시장에 대한 신뢰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이 이미 결제 안정성 측면에서 높은 수준이라는 점도 함께 강조했다. 린든 차오 아시아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 이사는 한국의 지연결제율이 0%에 가깝고, 이는 미국의 2~3%, 유럽의 7%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무조건 해외 선진시장 일정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제주기 단축, 거래시간 연장, 공매도 재개 같은 제도 변화가 한꺼번에 진행되면 운영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도 짚었다. 특히 여러 투자자의 자산을 하나의 계좌에서 통합 운용하는 옴니버스 시장 체제와 외환 유동성 여건이 충분히 갖춰져야 제도 전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한국예탁결제원은 지난 4월 말 글로벌 자산운용사가 옴니버스 계좌를 활용해 통합 주문과 펀드별 개별 결제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 개편을 마쳤고, 거래정보 자동 전달 체계 구축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과 유관기관은 제도 도입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부작용을 줄이는 단계적 접근을 예고했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T+1 결제가 이제 글로벌 자본시장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업계와 투자자, 유관기관과 긴밀히 소통해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도 외국계 투자자의 불편과 전환 비용을 줄일 접점을 찾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결국 한국 시장의 T+1 논의는 단순히 해외 추세를 따라가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투자자 편익과 국제 경쟁력, 외국인 투자 접근성, 시장 인프라 안정성을 어떻게 균형 있게 맞출지의 문제로 좁혀진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제도 도입 시기보다 선결 과제를 얼마나 정교하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실제 추진 속도가 갈릴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