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색대문’이 개봉 23년 만에 국내에서 재개봉되면서, 이 작품으로 데뷔했던 대만 배우 계륜미가 12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계륜미는 영화 상영에 맞춰 서울을 방문해 관객과 직접 만나는 시간을 가졌고, 이번 방문은 단순한 영화 홍보를 넘어 본인의 배우 인생에 대한 회고와 청춘에 대한 메시지를 되새기는 자리로 이어졌다.
2002년 제작된 ‘남색대문’은 대만의 고등학생들이 겪는 자아 정체성의 혼란과 사랑, 미래에 대한 불안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멍커로우 역을 맡은 계륜미는 당시 17세로, 촬영 당시 그녀 역시 영화 속 인물처럼 방황과 두려움을 느끼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작품이 단지 데뷔작이어서가 아니라, 배우로서의 인생 자체를 열어준 특별한 의미의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계륜미는 이번 재개봉과 관련된 인터뷰에서 “이 영화가 없었다면 저는 배우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감회를 전했다. 당시에는 연기의 기술보다 인물에 대한 감정에 집중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자신에게 남긴 메시지가 크다고 평가했다. 그는 자신을 단단히 만들어준 계기가 된 작품으로, 타인을 존중하는 법과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방법을 배운 영화였다고 전했다.
12년 만의 내한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보통 외국 배우의 내한은 신작 개봉을 앞두고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만, 오래된 영화 한 편의 재개봉에 맞춘 방문은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계륜미는 “다양한 연령대 관객들의 해석을 듣고 싶었다”며 영화가 세대를 뛰어넘어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상영회와 함께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GV)는 예매 시작 직후 매진되어 추가 회차가 편성되는 등 높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계륜미는 한국 영화와 배우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그는 평소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을 즐겨보고 있으며, 한국 배우 김고은의 팬이라고도 밝혔다. 2013년 ‘여친남친’ 홍보 이후 12년 만의 방문인 만큼 이번 일정은 새삼스레 한중 문화 교류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아시아권 콘텐츠에서의 정서적 연대와 문화적 공감이 영화를 넘어 배우 개인의 행보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시사한다. ‘남색대문’이 여전히 현재의 관객들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향후 고전 영화에 대한 재조명이 더욱 활발히 이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