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통신 인프라 이원화 대책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감사 결과가 드러나면서, 재난이나 위기 상황에서 대규모 통신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다시 제기되고 있다.
감사원은 10월 13일 발표한 ‘정보통신 인프라 위험대비 분야 감사보고서’에서, 주요 통신사업자들이 보유한 유선 회선 중 약 32%가 이원화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유선 회선은 유선전화, 인터넷 전화, 일반 인터넷 등을 연결하는 필수 인프라로, 단일 경로에만 의존할 경우 장애 발생 시 통신 기능이 통째로 마비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감사는 2018년 서울 아현국사(통신기지국) 화재 사건을 계기로 강화된 통신안전 대책의 실효성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당시 KT의 아현국사 화재로 서울 서부 일대 통신이 마비되며, 자영업자들의 카드 결제는 물론 소방·경찰 신고까지 차질을 빚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감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피해를 겪고도 통신망 구조는 크게 개선되지 않은 셈이다.
특히 상위국사와 직접 연결된 회선이나, 등급이 낮은 ‘기타국사’에 속하는 시설들은 현재 이원화 의무 대상이 아니므로, 통신사업자들이 이원화 투자를 소홀히 한 점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감사원은 이러한 구조에서는 한 국사에 장애가 발생할 경우 인접 회선까지 동시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광범위한 통신 두절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국사 등급 분류 기준을 다시 정비하고, 상위국사에 직접 연결된 회선도 이원화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또 다른 문제로는 기후재난에 따른 침수 위험이 지적됐다. 감사원은 강우 시 침수 취약지역으로 서울 영등포구와 강남구를 조사한 결과, ‘50년 빈도 강우’(50년에 한 번 꼴로 발생하는 강수량)가 나타날 경우 영등포의 15.3%, 강남의 4.7%에 달하는 통신 설비가 침수 위험에 노출된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대해서는 이 같은 자연재해에 대비할 수 있도록 통신 설비의 안전관리 방식을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이와 함께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관리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감사원은 전 세계 주요국들이 효율 향상을 위한 전력 수요 억제 정책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관련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산업통상자원부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지나치게 낮게 예측하고 있어, 향후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수요 예측 체계를 보완하라고 권고했다.
이 같은 감사원의 지적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는 현재, 통신망의 안정성과 에너지 관리가 국가 기반 인프라의 핵심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앞으로 관련 부처와 통신업계가 제도와 기술적 보완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느냐에 따라, 만일의 재난 상황에서 국가 전체의 대응 역량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