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푸드테크 산업의 투자 열기가 식어가고 있는 가운데, 인수합병(M&A) 시장은 오히려 활기를 띠며 전략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최근 단백질 바 제조업체 데이비드(David)는 7500만 달러(약 1,080억 원)를 조달하고, 식물성 지방 대체재 개발사인 에포지(Epogee)를 인수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벤처 펀딩이 급감한 푸드테크 산업에서 기업들이 생존과 성장의 돌파구로 ‘M&A’를 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크런치베이스(Crunchbase)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푸드테크 스타트업에 투입된 자금은 60억 달러(약 8조 6,400억 원)로, 2022년의 145억 달러(약 20조 8,000억 원), 2021년의 207억 달러(약 29조 8,000억 원)에 비해 큰 폭으로 줄었다. 2025년에는 현재까지 17억 달러(약 2조 4,400억 원)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올해 푸드테크 분야의 M&A 거래액은 이미 40억 달러(약 5조 7,600억 원)에 달해, 2024년 연간 총액 55억 달러(약 7조 9,200억 원)를 빠르게 추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데이비드는 이번 투자 유치를 통해, 인디애나폴리스에 본사를 둔 14년 차 푸드테크 기업 에포지를 전격 인수했다. 해당 기업은 식물 기반 저칼로리 지방 대체 성분 ‘EPG’를 개발해오며 주목받았고, 이는 데이비드의 핵심 성분으로 활용된다. 공동창립자 피터 라할(Peter Rahal) CEO는 “이 전략적 인수를 통해 공급망을 내재화하고 수요에 맞춘 생산 확대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뉴욕에 본사를 둔 데이비드는 총 8,500만 달러(약 1,220억 원)를 유치했으며, 이번 라운드는 그리노크스(Greenoaks)가 주도하고, 발로르 에쿼티 파트너스(Valor Equity Partners)가 참여했다. 기업 가치는 약 7억 2,500만 달러(약 1조 450억 원)로 평가됐다.
업계 전문가들은 벤처 투자 냉각의 주요 원인으로 ‘기대 과열’ 이후의 현실 조정을 지적한다. 배럴 벤처스(Barrel Ventures)의 설립자 네이트 쿠퍼(Nate Cooper)는 “시장 전망보다 기술 역량이 과대평가된 상태에서 많은 자금이 유입됐고, 상업화에 실패한 기업들이 속출했다”며 “이에 따라 시장은 현실적인 수익성과 운영 효율을 중시하는 쪽으로 전환 중”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대형 소비재(CPG) 기업들이 직접 제품 혁신을 시도했다가 전략 변화로 인수에 나서는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다”며 M&A 확산의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로 바렐 벤처스는 헬레이너(Helaina), 올리팝(Olipop) 등 다양한 푸드테크 기업에 투자한 바 있다.
빅 아이디어 벤처스(Big Idea Ventures)의 앤드류 디 아이브(Andrew D. Ive) 대표도 “후속 투자를 받지 못하는 스타트업 대부분이 매각을 선택하고 있고, 인수 희망자들에겐 안정적 기술과 자금 기반을 확보한 ‘좋은 매물’이 전보다 싸게 나오는 것”이라면서 지금이 ‘전략적 인수 기회의 창’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주목할 만한 M&A 사례도 속속 등장했다. 펩시(PEP)는 탄산 프로바이오틱 음료 브랜드 포피(Poppi)를 19억 5,000만 달러(약 2조 8,130억 원)에 인수했고, 플라워스 푸드(Flowers Foods)는 글루텐 프리 및 식물성 식품 제조사 심플밀스(Simple Mills)를 7억 9,500만 달러(약 1조 1,430억 원)에 인수했다. 또한 허쉬(The Hershey Company)는 스낵 제조업체 레서이블(LesserEvil)을 7억 5,000만 달러(약 1조 800억 원)에 사들였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데이비드는 이례적인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2023년 9월 법인 설립 후 1년 만에 제품을 출시하고 현재는 미국 내 3,000여 곳의 매장에서 판매 중이다. 첫 제품은 단백질 대비 칼로리 효율을 극대화한 바 타입 식품으로, 회사 측은 연간 매출 1억 달러(약 1,440억 원)를 넘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피터 라할 CEO는 과거 RX바(RXBAR)를 공동 창립하고 이를 켈로그(Kellogg’s)에 매각했던 인물로, 업계에서 실력파 창업자로 정평이 나 있다. 현재 일선 경영에서는 손을 떼고 있지만, 푸드테크 분야에서의 통찰력과 경험은 여전히 회사를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푸드테크라는 산업은 식품과 음료, 영양, 유기농 식품 전반을 아우르며 소비자의 건강 니즈와 환경 지속 가능성이라는 이슈 속에서 진화를 거듭 중이다. 다만 급변하는 투자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술뿐 아니라 수익성과 유통력, 전략적 제휴의 역량이 필수요건으로 부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