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대표적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ASML이 프랑스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미스트랄 AI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양사의 협력은 유럽 내 기술 생태계를 강화하고, 미국·중국에 비해 뒤처졌던 유럽의 AI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로 해석된다.
로이터 통신은 9월 7일(현지시간), ASML이 총 17억 유로 규모로 진행되는 미스트랄 AI의 시리즈C 투자 라운드에서 13억 유로(약 2조1천억 원)를 단독 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 투자를 통해 ASML은 미스트랄의 최대주주가 될 뿐 아니라, 이사회 이사직도 확보하게 된다. 시리즈C 라운드는 일반적으로 기업공개(IPO) 이전 단계로, 기업의 성장성과 시장성을 본격적으로 평가받는 시점이다.
미스트랄 AI는 설립 2년 만에 기업가치가 100억 유로(약 16조2천억 원)를 돌파한 유럽의 신흥 AI 강자다. 이번 투자 라운드를 통해 기업가치는 117억 유로(약 18조9천억 원)로 뛰어오르게 된다. 유럽 내 AI 스타트업으로는 최대 규모이며, 미스트랄은 자국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유럽판 챗GPT’로 불릴 만큼 기술력과 잠재력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다.
미스트랄은 미국 AI 기업 오픈AI(챗GPT 개발사)의 대항마로 자주 언급되며, 공동 설립자인 아르튀르 멘슈는 구글 산하 AI 개발 조직 딥마인드 출신, 티모테 라크루아와 기욤 람플은 메타(구 페이스북)에서 AI 연구를 담당했던 인물들이다. 앞서 미국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도 미스트랄에 투자한 바 있어, 이번 ASML의 대규모 투자는 중심축이 미국에서 유럽으로 확장되는 하나의 전환점으로 볼 수 있다.
ASML 입장에서도 이번 투자로 얻는 이점이 크다. 자사가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는 첨단 반도체 제조의 핵심 설비로 꼽히는데, 미스트랄의 AI 분석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장비 성능 개선과 신제품 개발에 시너지가 기대된다. 더불어 반도체와 AI의 결합은 향후 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될 것으로 예상돼, ASML이 단순한 장비 기업에서 데이터 기반 기술혁신 기업으로 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같은 유럽 기술기업 간의 연대는 AI 산업 주도권이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흐르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도 독자적 역량 확보에 나서고 있음을 시사한다. 향후 유럽 내 다양한 기술·제조 중심 기업들이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면, 글로벌 AI 경쟁 구도에 새로운 균형점이 생길 가능성도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