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처럼 부드럽지만 필요할 땐 강철처럼 단단해지는 차세대 인공 근육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이 기술은 사람처럼 섬세하면서도 강한 동작이 필요한 로봇과 웨어러블 장치에 활용될 수 있어 주목된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계공학과 정훈의 교수 연구팀은 인공 근육의 유연성과 강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소프트 인공 근육’을 새롭게 개발했다고 9월 17일 밝혔다. 말랑말랑한 재질의 인공 근육은 기존에도 있었지만, 동시에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기술은 드물었다. 실제 사람의 근육 역할을 대체하거나 보조하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정 교수팀이 개발한 인공 근육은 상황에 따라 성질을 바꿀 수 있다. 물체를 들어야 할 때는 단단해져 하중을 지탱하고, 반대로 수축이 필요할 때는 부드럽게 변형된다. 이 인공 근육은 무게가 1.25그램에 불과하지만 단단한 상태에선 최대 5킬로그램까지 하중을 버틸 수 있으며, 이는 자기 무게의 약 4천 배를 견디는 뛰어난 성능이다. 또 부드러운 상태에선 원래 길이의 12배까지 늘어나며, 수축 시에는 86.4%의 길이까지 줄어들 수 있어 실제 사람의 근육(약 40%)보다 두 배 이상 유연하다.
에너지 효율성도 기존 기술보다 월등하다. 1세제곱미터(㎥)의 인공 근육이 발휘할 수 있는 에너지를 나타내는 ‘작업 밀도’는 1천150킬로줄(㎾)/㎥로, 사람 근육보다 약 30배 높다. 이처럼 단단하면서도 잘 변형되는 특성을 동시에 갖는 것은 인공 근육 개발 분야에서 매우 어려운 과제로 여겨져 왔다.
이 같은 성능은 특수 고분자 구조 덕분에 가능했다. 연구팀은 ‘형상기억 고분자’라는 재료를 이용해 근육 조직 내에 두 종류의 결합 구조를 설계했다. 하나는 공유결합으로 근육을 튼튼하게 묶어 강도를 유지하게 하고, 다른 하나는 열 자극을 받아 끊어졌다가 다시 붙는 물리적 결합으로 유연함을 구현했다. 여기에 자성 입자를 첨가해 외부 자기장에도 반응하게 함으로써, 자기장을 이용한 근육 제어 실험에도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수행됐으며, 과학기술 분야의 권위 있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터리얼즈(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이달 7일 온라인 게재되며 기술적 완성도를 인정받았다.
정 교수는 “소프트 로봇이나 웨어러블 기기, 사람과 기계가 보다 부드럽고 안전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는 기반 기술”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앞으로 이 기술이 재활 보조 장치, 인공 사지, 로봇공학 등 여러 분야에서 실용화됨에 따라 사람과 공존하는 기계기술의 진보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