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컴퓨팅이 보안 지형을 뒤흔들 기세로 다가오면서, 글로벌 기업과 정부 기관들이 이에 대비한 '양자 사이버 대비(Quantum Cyber Readiness)'를 디지털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민감한 정보를 차세대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기술 변화 속에서도 신뢰 기반의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딜로이트(Deloitte Touche Tohmatsu)의 매니징 디렉터 콜린 소터는 “최근 1~2년 사이에 양자 보안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고, 이제는 이를 구체적인 리스크 관리 대상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며 “기업들이 자사의 취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응 전략을 수립해 나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실적 접점은 기술 설계와 정책의 전환에서 나타난다. 디지서트(DigiCert)의 최고 신뢰 책임자(CCO)인 락슈미 한스팔은 “양자 대비 설계는 다섯 가지 속성을 갖춰야 한다”며, 그 핵심 요소로 ‘암호 기술의 신속한 교체력’, ‘하이브리드 알고리즘 통합’, ‘비즈니스 연속성 보장’, ‘규제 컴플라이언스 유지’, 그리고 ‘반복 가능한 설계’ 등을 꼽았다. 이러한 요소는 단지 위협을 회피하는 수단이 아니라, 양자의 충격을 기회로 전환하는 전략적 전환점이기도 하다.
포스트 양자 암호(Post-Quantum Cryptography, PQC)는 이러한 대비 전략의 중심에 있다. 소터는 “PQC로 전환이 본격화되며 공개키 기반 구조(PKI)도 함께 현대화되고 있다”며 “앞으로는 양자 보안 시스템을 도입한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 간에 ‘신뢰 격차’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업계 전반에 암묵적인 ‘업그레이드 비용’과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디지서트는 자체 기술을 내부에서 우선 도입하는 ‘Customer Zero’ 프로그램을 통해 성공적인 도입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의 기준을 반영해 보안 적합성을 입증하며, 외부 고객에게 신뢰도를 갖춘 양자 안전 플랫폼을 전파하는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한스팔은 “이제는 이론적 논의에서 벗어나 실제 구현과 운용 단계로 가야 한다”며 “디지서트는 증명서, 소프트웨어, 기기, 문서 부문에서 핵심 인프라를 담당하는 만큼, 모든 분야에서 양자 대비를 적용해 검증된 모범 사례를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자 시대의 도래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디지털 보안 체계의 근본적인 재설계를 요구하는 전환점이다. 양자 사이버 대비는 미래 위협에 대한 사전 방어가 아니라, 기술과 비즈니스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