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용 반도체 칩세트 기술 경쟁이 단순한 하드웨어 성능을 넘어, 인공지능(AI) 학습 체계와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 싸움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완성차와 정보통신기술(ICT), 반도체 기업 간 복합적인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자율주행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처리하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바퀴 달린 인공지능 플랫폼’으로 진화 중이다. 이 차량에는 수십 개의 센서가 장착돼 주변 환경을 실시간으로 스캔하고, 이를 고속 연산을 통해 해석해 주행 결정을 내린다. 이 일련의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부품이 바로 반도체 칩세트다. 자율주행차의 성공 여부는 이 칩의 처리 속도, 안정성, 그리고 에너지 효율 등에 좌우된다.
센서로부터 수집되는 데이터는 라이다, 레이더, 카메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얻어지며, 이질적인 데이터를 통합하는 ‘센서 융합’ 기술이 필수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카메라는 그림 인식에 유리하지만 날씨에 취약하며, 라이다는 정밀하지만 먼지에 민감하고, 레이더는 해상도는 낮지만 기상 조건에 강하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려면 세 가지를 통합 분석할 수 있는 고성능 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자율주행 칩에는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신경망처리장치(NPU)가 통합돼 있어 1초에 수십조 회 이상 연산이 가능하다.
현재 자율주행칩 시장 경쟁은 미국 테슬라, 엔비디아, 퀄컴, 인텔(모빌아이)부터 중국의 화웨이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테슬라는 2019년부터 독자 설계한 ‘HW3 칩셋’을 삼성 파운드리를 통해 생산하면서, 외부 반도체 의존도를 줄였다. 이후 HW4, HW5로 세대를 거치며 연산능력을 각각 3~4배씩 향상시켰다. 테슬라의 칩은 차량에 장착된 카메라로 수집한 모든 정보를 클라우드로 공유하고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OTA(무선 업데이트 시스템)를 통해 전 세계 차량에 동시에 개선 기능을 반영한다.
중국의 ICT 기업 화웨이도 자율주행 솔루션 개발에 주력 중이다. 화웨이의 ‘어센드(Ascend)’ 시리즈와 ‘MDC’ 플랫폼은 차량 내부뿐 아니라 교통인프라에 연결되는 전체 생태계를 대상으로 한다. 이 칩들은 초당 200~400 TOPS(테라 연산)를 처리하며, 센서 분석부터 알고리즘 개발 도구까지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처럼 자율주행차 반도체 산업이 하드웨어 성능 중심에서 벗어나 데이터 처리 기술, AI 모델 정밀성, 보안성, 차량 운영 체계와의 연계 등 복합 요소로 확장되고 있다. 실제로 자율주행차 한 대가 생성하는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중앙 서버에 축적돼 다른 차량과 공유되며, 이 정보를 기반으로 AI는 도로 위 복잡한 돌발 상황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기술 개발은 법적·윤리적 기준까지 고려한 전방위적인 운행 안전성을 뒷받침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흐름은 자율주행차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학습하고 진화하는 ‘지능형 존재’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에는 누가 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AI 플랫폼을 구축하며, 데이터 생태계를 확보하느냐가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결정짓는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