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NFLX)가 영상 제작 자동화 서비스 런웨이(Runway)의 AI 기술을 도입하면서, 할리우드의 창작 모델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테드 서랜도스(Ted Sarandos) 최고경영자 주도로 넷플릭스는 시각효과 제작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AI 활용을 본격화했고, 이것이 단순한 기술혁신을 넘어 창작 생태계 전반의 균형을 재편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술이 주도하는 변화는 눈앞의 비용 절감 이상의 파급 효과를 낳고 있다. 과거 수십 명의 아티스트들이 주 단위로 작업해야 했던 VFX 장면을 AI는 단 며칠 만에 완성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 결과 콘텐츠 제작의 속도와 규모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수많은 입문 및 중간 경력의 시각효과 종사자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우려도 크다. 반복 작업을 대체하는 수준을 넘어서, AI는 이미지 조합과 편집 제안까지 수행하는 창작 주체로 진화 중이기 때문이다.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AI를 채택하면서 창작력이 알고리즘화되는 반면, 개인 창작자와 소규모 제작사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 런웨이와 같은 도구들은 자본력이 부족한 이들에게도 박진감 넘치는 비주얼을 구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며, 기존의 폐쇄적인 콘텐츠 유통 구조에 균열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탈중앙화’ 가능성을 주류 산업이 진정으로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자칫하면 AI 기술은 오히려 기존 질서 강화를 통해 창작을 더 일률화하고 산업을 수치화된 성과 지표 중심으로 몰아가는 수단이 될 수 있다.
AI 시장의 실리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메타(META)의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가 런웨이 인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는 보도는, 향후 콘텐츠 제작의 주도권이 테크 기업 손에 넘어갈 것임을 예고한다. 콘텐츠는 더 빠르고 저렴하게 생산되지만, 그 본질이 사용자 반응 최적화에 치중할 경우 창의적 실험이나 문화적 다양성은 서서히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노동시장도 불균형 위험에 직면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 AI 감수자 등 신종 직군이 생겨나고 있지만, 이 직무들은 높은 기술력과 학습 비용을 요구한다. 반면, 기술 전환의 사각지대에 놓인 중간층 아티스트들은 대체재로 전락하거나 아예 도태될 수도 있다. 기존에도 프리랜서 중심의 불안정한 구조를 가진 엔터테인먼트 산업 내에서 AI는 양극화를 가속할 위험이 있다.
더불어 AI가 생산한 이미지와 영상물의 저작권, 사용 범위, 원작자 보상 문제 등은 윤리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연 누가 창작자인가, 그리고 누구에게 침해당한 창작물의 권리를 인정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들이 현행 법체계로는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대중 입장에서도 AI로 제작된 콘텐츠에 대해 투명한 정보 공개와 새로운 신뢰 기준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AI는 사람과 경쟁해선 안 되고, 창작을 보조하는 동반자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를 실현하려면 노동조합, 창작자 단체 등이 AI 기술 도입 과정에 직접 관여하고, 새로운 교육과 수익분배 구조를 제시해야 한다. 아울러, 콘텐츠 소비자와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장면에 AI가 사용됐는지 공개하는 등의 투명성 강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넷플릭스의 AI 채택은 단순한 기술 채용을 넘어, 할리우드가 미래를 어떻게 새롭게 정의할 것인지 시험대에 오른 사건이다. 이 기술이 창작을 민주화하는 도구가 될지, 아니면 단 몇몇 기업만이 창작의 주도권을 독점하는 상황을 초래할지 — 선택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할리우드 내부에서 형성되고 있다.
AI가 할리우드의 뮤즈로 남을지, 아니면 지휘자로 군림할지는 향후 몇 년 안에 결정될 것이다. 각본은 전통 제작자들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쓰기 시작했고, 우리는 지금 그 이야기의 갈림길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