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BTC)의 국가 차원 활용 가능성은 이제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일부 국가들이 암호화폐, 특히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을 전략적 자산으로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글로벌 경제 질서와 외환 시스템의 한계, 미국 달러 기반 금융의 변동성을 타개하려는 시도다. 최근에는 파키스탄이 비트코인 전략 준비에 본격 착수하며 이 흐름에 동참했다.
파키스탄 정부 산하 기관인 '파키스탄 크립토 위원회'는 최근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SBR) 조성을 선언했다. 2억 4,000만 명 넘는 인구와 약 1조 7,375억 원 규모의 국내총생산(GDP)을 가진 파키스탄이 비트코인 준비금을 구축하려는 배경에는, 높은 소비자물가지수(CPI)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달러 시스템 의존으로 인한 경제적 압박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준비금 구축 계획에 마이크로스트래티지(MicroStrategy)의 공동 창립자인 마이클 세일러(Michael Saylor)가 지지를 표명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결정은 보수적인 이미지를 지닌 파키스탄의 정책 기조를 감안할 때, 비트코인을 국가 경제 디지털 전환 자산으로 바라보는 획기적인 변화로 볼 수 있다. 과거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시도는 단순한 가치 저장 수단을 넘어 국가 재정 운용 수단으로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을 의미한다.
전 세계적으로 전략적 비트코인 준비금에 대한 논의는 확산 중이다. 브라질, 일본, 러시아, 중국 등도 해당 개념을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국가는 모두 미국 달러를 자국 통화로 사용하지 않는 '비달러권'이며, 대부분 높은 인플레이션이나 외환 통제와 같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따라, 암호화폐 기반의 신규 준비금 체계가 경제 회복의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은 특히 제재나 외환 시장 접근 제약을 받는 국가들에게 대체 결제 경로를 제공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의 개방성과 검열저항성은 이러한 국가들이 기존 국제 금융망(SWIFT 등)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금융 생태계를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부탄은 이미 상당한 규모의 비트코인 보유를 통해 일부 지역 간 무역을 암호화폐로 결제하는 사례를 만들고 있다.
엘살바도르는 비트코인을 도입한 이후, 암호화폐 스타트업과 관광 산업의 활성화라는 부수 효과를 경험했다. 파키스탄 역시 비트코인 준비금 확립을 통해 해외 투자 유치와 금융 현대화의 가속화를 기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빈곤 감소와 경제 활성화라는 장기 목표에 다가가기를 원하고 있다.
암호화폐는 특히 금융 소외층에게 금융 접근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접근 가능한 디지털 지갑을 통해 unbanked 인구도 세계 금융 시스템에 연결될 수 있으며, 스테이블코인 기반 송금은 재외국민의 본국 송금을 빠르고 저렴하게 변화시켜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
물론 암호화폐의 채택이 만능 해결책은 아니다. 그 가격은 여전히 큰 변동성을 동반하며, 공공자금을 디지털 자산에 배치하는 데는 정치적, 사회적 합의와 면밀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전체적인 국가 경제 전략 속에서 국민에게 실질적인 이익이 전달될 수 있도록 신중한 설계가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이 암호화폐를 통해 전통 금융 시스템을 우회하고 새로운 성장 경로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는 분명 존재한다. 비트코인의 희소성, 높은 유동성, 분산성을 활용한 적극적인 준비금 전략은 국가 차원의 재정 다변화 수단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누가 먼저 이 '크립토 국가 전략'을 완성하느냐에 따라 미래 국제 경제 질서에서의 위상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