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대법원이 암호화폐 거래소 와지르엑스(WazirX)를 둘러싼 치밀한 기만 행위와 규제 위반 실태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판결에 따르면, 이용자들은 의도적으로 은폐된 정보와 왜곡된 절차에 따라 투표에 참여했고, 해당 거래소는 실질적 통제를 받는 주체조차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2024년 발생한 약 2억 3,500만 달러(약 3,267억 원) 규모 해킹으로 이미 위기에 처한 와지르엑스는 이번 판결로 또 다른 치명타를 맞았다.
이번 소송은 와지르엑스가 사용자들의 동의를 얻기 위해 실시한 표결이 사실상 ‘사기’에 가까웠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 싱가포르 대법원의 크리스티 탄 판사는 "중요한 정보가 은폐돼 사용자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며, 해당 투표를 무효로 선언했다. 법원은 “사법적 개입 없이는 다수 사용자들이 잘못된 정보에 기반해 손해를 입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법정에서 더욱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다. 와지르엑스의 파트너 기업 제타이(Zettai)가 싱가포르에서 디지털토큰서비스제공업자(DTSP) 라이선스 없이 불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심지어 해당 라이선스를 취득할 계획조차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단순한 규제 무시를 넘어서 불법적인 영업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중대한 위반이다.
이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법원은 와지르엑스와 제타이가 회사의 실질적인 지배 주체를 숨기고 있었음을 지적했다. 실제 의사결정은 파나마에 기반을 둔 기업 젠스이(Zensui)에서 이뤄지고 있었지만, 이 같은 사실은 그동안 사용자나 감독 당국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는 전 사회적인 행정력 낭비이자 신뢰를 저버리는 행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한 인도 금융정보단(FIU)에 대한 신고 의무도 미이행된 사실이 법원에서 확정됐다. 와지르엑스는 인도에서도 기본적인 규제 등록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국제적으로 규제 회피 정황을 드러냈다. 이와 같은 법무전략 실패로 와지르엑스의 구조조정 계획은 법원에서 기각됐고, 회사는 곧바로 파나마로 본사를 이전하며 젠스이 브랜드로 재편을 추진 중이다.
향후 와지르엑스 이용자들이 도난당한 자산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거래소는 항소 의사를 밝혔지만, 법원에서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회복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용자들의 법적 대응 움직임도 예상되는 가운데, 이번 판결은 암호화폐 업계 전반에 ‘투명성’과 ‘책임성’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다시 부각시킨다.